2018년 9월 11일 '라 디아다'의 바르셀로나. 펄럭이는 깃발이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의 '국기'다. Wikimedia commons.

스페인 북동부 자치주 카탈루냐의 9월 11일은 ‘라 디아다(La Diada)’라 불리는 큰 기념일이자 공휴일이다. 카탈루냐어로 ‘그날(The Day)’이란 뜻의 이날은,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막바지에 카탈루냐 왕국이 프랑스-스페인 부르봉 왕조(필리페 5세)의 유럽 패권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영국과 합스부르크왕가의 신성로마제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연합군대에 가담했다가 패배한 날이다. 1701~1714년 동안 40만여명의 희생자를 낸 그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바르셀로나 공성전이었다. 1714년 9월 11일, 주도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처절한 저항 끝에 필리페 5세 군대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까 ‘그(이) 날’은 12세기 중엽 건국한 카탈루냐 왕국이 주권을 잃고 카스티야(주도 리스본) 왕국에 합병된 날이다.

로마와 게르만 프랑크 왕국, 8~15세기의 700여년 동안 이슬람 왕조의 통치를 받아온 스페인은 1492년 독립과 동시에 아라곤-카스티야 등 4왕국 통일로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16~17세기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앞세워 프랑스 일부를 포함한 남유럽 거의 전역과 남북 아메리카, 필리핀의 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장악한 대제국이 됐다.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 등 후발 제국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종교전쟁인 30년전쟁에서도 신교국 프랑스에 패배했다. 왕위계승 전쟁은 사실상 승패 없이 끝났지만 스페인은 더 쇠락한 대신 카탈루냐를 얻었다.

카탈루냐는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 체제 하에서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1936년 발발한 내전과 1939년 프랑코 정권에 의해 다시 박탈당했다. 언어와 전통, 문화, 깃발 등 상징 일체가 불법화됐다. 1975년 프랑코 사후 자치권은 회복됐지만, 오랜 탄압이 독립의 열정을 더 달구었다. 스페인 전체 GDP의 20%를 차지하는 튼튼한 산업 자산과 서유럽 관문으로서의 입지, 피레네 산맥과 지중해를 동시에 가진 관광 명소란 점도 자신감의 기반이다. 2014년 이후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시민들은 독립선언과 주민투표, 공화국 선포 등을 통해 끊임없이 독립을 시도해 왔고, 중앙 정부는 자치권 확대 등의 당근과 무력 진압의 채찍으로 독립 열기를 누르고 있다. 그 압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 오늘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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