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다음 같은 기록이 있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말로써 사람을 판단했다가 재여를 잘못 봤고 외모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자우를 잘못 보았다.”
재여라는 제자는 구변이 뛰어나서 똑똑하다고 여겼으나 실제 생활은 허황된 사람이었고, 자우라는 제자는 용모가 추하여 탐탁하지 않게 여겼는데 생각과 달리 뛰어난 인품의 소유자였다.
사람 알아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성인인 공자도 사람 보기가 이처럼 힘들었다. 그러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자고로 사람을 식별하고 품평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게다가 시대나 당사자의 지위 혹은 역할에 따라 인물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봉건시대에는 가문의 후계자를 고르는 일이 중대사였다. 여기서도 적임자를 선별해낼 남다른 눈이 필요했다. ‘국어(國語)’에 다음 같은 기록이 있다.
전국시대, 지선자(智宣子)가 아들 지요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러자 지과(智果)가 충고했다. “지소가 낫습니다.” 지선자가 말했다. “지소는 강퍅하오.” 지과가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지소의 강퍅한 성미는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나 지요의 강퍅함은 마음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내면의 강퍅함은 나라에 화난을 불러들이나 표면의 강퍅함은 큰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지요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다섯 가지 장점이 있으나 남들보다 부족한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수염이 멋있고 몸이 건장한 것이 첫째 장점이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뛰어나고 힘이 센 것이 둘째 장점입니다. 갖가지 기예를 갖춘 것이 셋째 장점이고, 언사가 교묘하고 총기가 있어 임기응변에 능한 것이 넷째 장점이며, 굳세고 과단성이 있는 것이 다섯째 장점입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으나 속이 좁고 각박합니다. 다섯 가지 장점을 가지고도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업신여기니 누가 그와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지요를 후계자로 삼으면 지씨 일족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씨(智氏)는 진(晉)나라의 막강한 가문이었다. 그런데 후계자로 거론된 두 사람은 모두 강퍅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들의 부친 지선자는 겉만 보고 지요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현자인 지과는 지요의 내면을 간파하고 위험한 처사라고 경고했다. 겉으로 드러나면 주변에서 알아채서 저지하고 교정할 수 있지만, 속을 알 수 없으면 아예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요를 후계자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선자는 듣지 않았고 지과는 결국 성을 보씨(輔氏)로 바꿨다. 지씨가 망할 때 오직 보과(輔果)의 집안만이 살아남았다.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평론을 제시한다.
“지요가 망한 이유는 재주만 많고 덕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才勝德). 재주와 덕망은 다른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하여 모두 훌륭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사람을 잘못 보는 것입니다. 총명하고 분명히 살피며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것은 재주입니다. 정직하고 공정하며 사람에게 온화한 것은 덕망입니다. 재주는 덕망을 보좌하는 것이고 덕망은 재주를 통솔하는 것입니다…. 재주와 덕망을 겸비한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고, 재주와 덕망이 모두 없는 사람을 우인(愚人)이라고 하며, 덕망이 재주를 이기는 사람을 군자, 재주가 덕망을 이기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합니다. 사람을 고를 때 성인, 군자를 찾지 못한다면 소인보다는 차라리 우인이 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우인은 악을 행하고자 하여도 지혜가 모자라고 힘도 미치지 못합니다. 마치 하룻강아지가 사람을 물려하면 막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인의 지혜는 간악한 일을 해낼 수 있고, 소인의 용기는 흉악한 짓을 할 만하니, 이는 사나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위험과 해로움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예로부터 지금까지 난신적자는 모두 재주만 넘치고 덕망이 부족하여 가문과 나라를 멸망케 한 것입니다. 어찌 지요뿐이겠습니까. 가문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재주와 덕망을 신중하게 살펴 사람을 고르는 선후를 헤아린다면 어찌 인재를 잃을까 걱정하겠습니까.”
사마광이 보기에 재주가 덕망보다 넘치는 자는 위험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이나 재주보다는 덕망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임금도 소인을 경계해야 한다. 임금의 이상행동에는 소인이 배후에 있다고 보았다. ‘대학(大學)’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조목 아래 이런 구절이 있다. “나라와 가문의 수장이 재물을 쓰는 데만 힘쓴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것을 부추기는 소인이 있다. 저 소인에게 나라와 가문을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해로움이 함께 올 것이니, 그때 비록 유능한 자가 사태를 수습하려 해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이(利)를 이로움으로 삼지 않고 의(義)를 이로움으로 삼는다’고 한다.” 사람을 알아보고, 적당한 사람을 골라 쓰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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