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들로 백악관 경제위원장도 미소 냉전 빗대 “갈등 오래 갈 것”
미중 무역분쟁을 과거 냉전 시대의 미국-소련 갈등에 빗대며 장기화를 예견하는 권위자들의 발언이 줄을 잇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경제학자가 미중 무역분쟁을 새로운 냉전의 서막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백악관 경제 참모는 중국을 냉전 시대 소련에 비유하며 장기전을 공언했다. 내달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 재개 소식에 시장은 반색하고 있지만, 양국 갈등이 이미 무역을 넘어 전면적으로 확대된 터라 단기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영국 출신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암브로세티 경제포럼에서 “미중 무역분쟁은 이미 두 번째 냉전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무역으로 시작된 양국의 분쟁이 기술, 금융, 지정학적 영역까지 번졌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 전까지는 무역협상을 마무리하려고 하겠지만, 특히 기술 영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조차 분쟁의 흐름을 돌려세울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등을 두고 무력 충돌할 가능성은 낮게 봤다.
퍼거슨은 2008년 출간한 저서 ‘금융의 지배’ 등을 통해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공생관계를 뜻하는 ‘차이메리카’라는 개념을 제안해 유행시켰다. 차이메리카는 중국이 생산, 미국이 소비를 분담해 각자 경제성장을 이루는 상호의존 관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나 퍼거슨은 이번 연설에서 “밀접한 상호의존 관계도 힘의 균형이 바뀌게 되면 대립 관계로 변화할 수 있다”며 양국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놨다.
협상 직전에는 낙관론을 설파해왔던 백악관에서도 미중 관계를 냉전에 빗댄 발언이 나왔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6일 기자회견에서 “미중 합의의 규모와 범위, 중요성을 고려해 본다면 (무역 분쟁이 지속된) 18개월은 길지 않다”며 “구 소련과의 대립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십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미국이 중국 정부를 뒤집으려는 의도가 없다”면서도 “이 분쟁이 50년 또는 100년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했다.
미중 분쟁 장기화를 경고하는 전망은 국내에서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는 6일 발행한 보고서에서“미중 무역분쟁은 관세ㆍ기술ㆍ환율 분쟁이 복합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1980년대 미일 무역분쟁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 협상에서 합의를 이루더라도 분쟁은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달러화 절하 등을 시도한다면 현재 국지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분쟁 전선이 확산돼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중 분쟁이 세계에 끼칠 피해가 미소 냉전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유명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 5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칼럼에서 미중 분쟁을 ‘냉전’에 가깝다고 묘사하면서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양국 관계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급속한 탈세계화로 인한 혼란이 이어지거나 서로 호환하지 않는 두 개의 경제로 쪼개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