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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한일 핵무장’ 첫 거론하며 北ㆍ中 동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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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한일 핵무장’ 첫 거론하며 北ㆍ中 동시 압박

입력
2019.09.08 18:11
수정
2019.09.08 20:2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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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와 대화 내용 소개… 협상 실패 땐 아시아 핵확산 가능성 지적

폼페이오, 모든 나라의 ‘자위권’ 언급하며 北 체제안전 보장 재확인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6월 2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6월 2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실무적으로 총괄해 온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미 협상 실패 시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 측에 “조속히 협상 무대로 복귀하라”고 촉구하며 꺼낸 발언이긴 하지만, 비핵화 합의 불발 시 초래될 수 있는 극단적 상황을 공개 거론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일의 핵무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중국까지 겨냥한 압박성 메시지로 풀이된다.

비건 대표는 6일(현지시간) 모교인 미시간대 강연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의 대화 도중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키신저 박사는 북한 핵무기 제거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실패하면 그 이후엔 아시아 지역의 핵확산 도전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이웃 나라를 위협할 능력을 보유한 북한은 50년 이상 구축된 비확산 국제규범을 깨뜨리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며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맹들은 부분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포함된 확장 억지에 대한 신뢰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그만뒀다”고 덧붙였다.

비건 대표는 “하지만 그런 (핵)무기가 그들의 영토로부터 단거리 탄도미사일 비행거리 안에 있다면, 그런 확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겠느냐”며 “어떤 시점엔 한국과 일본,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핵 능력 재고의 필요성을 묻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실패에는 항상 결과가 따른다. 나는 국제사회가 이 일(비핵화 협상)에 실패할 경우, ‘북한이 아시아에서 마지막 핵보유국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키신저 박사의 말이 맞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비건 대표의 언급은 키신저 전 장관 발언을 인용한 형식이긴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에서의 ‘핵확산’ 가능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한일 핵무장을 막길 바란다면,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추가 노력을 해 달라’는 압박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비건 대표는 이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언급하면서 “이는 모두의 손해다. 우리는 핵보유국을 더 원하지 않는다. 중국도, 러시아도 그렇다”며 “(대북) 정책의 차원에 있어 중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캔자스주립대에서 강연이 끝난 뒤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맨해튼=AP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캔자스주립대에서 강연이 끝난 뒤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맨해튼=AP 연합뉴스

아울러 비건 대표는 이날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소식을 듣는 즉시 교섭할 준비가 돼 있다”며 실무 협상 복귀를 거듭 촉구한 뒤, 비핵화 시의 경제 발전과 안전 보장 등 ‘밝은 미래’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1년간 ‘중대한 진전’을 이루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기존의 속도조절론과는 다른 취지의 언급도 했다. ‘향후 1년’이라는 구체적 시한을 설정한 것과 관련,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북 정책 성과를 내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비건 대표는 “WMD 개발은 국제적 규범에 대한 ‘반항’이며, 세계는 북한의 WMD 고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북한을 향한 ‘협상 복귀’ 촉구 발언은 이날 미국의 대북 정책 사령탑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한테서도 나왔다. 미주리주 및 캔자스주의 지역 매체들과 인터뷰에 나선 그는 “북한의 핵무기 시스템은 그들의 믿음과는 달리, 북한에 안전 보장을 제공하지 않는다”면서 미국 및 세계와의 비핵화 합의에 이를 때에만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상응 조치가 주어질 것임을 재확인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자위권을 인정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나라는 스스로를 방어할 주권을 가진다”며 “우리는 경제적 기회와 함께 북한 주민의 더 나은 삶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위권과 자주권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개발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북한으로선 미국이 한층 더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난달 20일 한미 연합군사훈련 종료 이후에도 북한이 실무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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