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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럼에도, 추석

입력
2019.09.0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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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경북 경주시 구황동 고향마을 친정을 찾은 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논자락 길을 걷고 있다. 마중나온 친정어머니는 기쁘게 반긴다. 이른 추석으로 아직 황금빛 논은 아니지만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언제나 풍요롭고 정겹다. 왕태석 기자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경북 경주시 구황동 고향마을 친정을 찾은 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논자락 길을 걷고 있다. 마중나온 친정어머니는 기쁘게 반긴다. 이른 추석으로 아직 황금빛 논은 아니지만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언제나 풍요롭고 정겹다. 왕태석 기자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여름 한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추석에 앞서 오는 이 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명절’이라는 낱말에는 차가운 느낌이 있다. 단오, 한식도 있지만 여름 끝 무렵에 다가오는 추석, 한겨울의 설날이 ‘명절’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과거와 달리 명절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바쁘게 오가는 택배 차량과 공항을 가득 채운 관광객 외에는 추석이 오는 걸 느끼긴 쉽지 않다. 고속철도와 도로가 확대ᆞ정비되며 고향을 왕래하긴 편해졌지만, 친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알바생 64.7%, 직장인 45.0%가 올해 추석 연휴에 출근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게와 식당이 문을 닫고 그래서 서울에 혼자 남은 사람은 밥을 사 먹기도 힘들던 과거와 비교할 때, 쉽게 쇼핑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요즈음의 추석 풍경은 낯설다. 이런 모습은 요즘 사람들이 명절을 전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윗세대들은 이런 변화를 아쉬워한다. 그들에게 명절은 몇 주 전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평소에 보기 힘든 음식을 친지들과 함께 나누는 기간이었다. 이웃 동네의 친척들이 며칠 동안 묵으며 이런저런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세상사를 전해 듣던 즐거운 기억을 그들은 간직하고 있다. 이제 그런 명절은 없다. 음식은 너무 흔해져 누군가의 농담처럼 허기(虛氣)가 희소재로 취급되고, IT와 방송의 발전으로 세상의 소식이 과잉되게 흘러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의를 갖춰 얼굴을 맞대며 얘기하지 않고, 문자와 영상 속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뜻과 감정을 드러낸다. 어른들로부터 듣던 집안과 동네의 내력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다뤄진다.

이들의 아쉬움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한 농촌의 따뜻하고 결속력 높은 씨족 공동체의 전통, 그리고 그 속에서 배양된 협력과 배려의 윤리(이철승, ‘불평등의 세대’)에 대한 그리움에 기초한다. 윗세대들은 그런 공동체에서 자라나 산업화 과정에서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낯선 도시로 이식되었다.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에서 보여 주는 1980, 90년대의 마을 공동체, 즉 변두리 동네 아이들이 함께 놀고 친구 집에서 스스럼없이 식사하며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초기 산업화 사회를 구성한 도시민들이 과거의 질서와 윤리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불거지는 세대 갈등은 씨족 공동체의 위계질서가 여전히 존속하고, 산업사회의 좀 더 평등한 관계 질서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정이 원인일 수 있다. 때때로 언론에선 윗세대의 위계질서에 대한 집착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이는 그 원인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과거의 의례를 강조하는 근저에는 연령으로 형성되는 위계질서(이것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공동체의 일반적 조직 질서라고 한다)가 흔들린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마음 아래에는 어린 시절 경험한 농촌의 따뜻했던 협력과 배려의 삶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한다. 과거의 좋은 전통이 당대에서 무너지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가치관과 기준이 없는 상황을 스스로 납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한국 사회의 이 모순과 갈등은 윗세대가 공동체를 떠나 산업화에 헌신하고 그 모험에서 성공한 덕분이다. 산업화의 모험이 실패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공동체와 전근대적 질서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세대가 형성 중인 윤리와 가치관 역시 산업화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못마땅해 할 이유가 없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인과(因果)가 있는 듯하다. 올해 추석은 조금 더 편안하게 서로를 이해하며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어수선한 과도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추석엔 따뜻한 인사와 위로가 어울린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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