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비평가들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추측하는 사건이 있다. 포르투갈계 유대인이었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였던 로드리고 로페즈 사건이다. 그는 1592년 2월에 여왕을 독살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해 6월 7일에 대역죄로 처형당한다. 이 사건은 드라마 속 사악한 유대인이라는 전형적 인물이 등장하게 된 계기로도 여겨진다.
로페즈 박사는 정말 여왕을 독살하려 했을까?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영국으로 추방되어 의사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인종적 편견과 모함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인사들을 상대하는 의사가 되었으며, 17년 만에 마침내 왕실 주치의 자리에 올라 명망과 부를 거머쥐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자기를 추방한 모국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성공의 증명인 여왕을 해치는 음모에 가담했을까?
리튼 스트레치는 ‘엘리자베스와 에식스’에서 로페즈 박사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둘러싼 정치 세력들의 다툼 혹은 자존심 싸움에 희생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일은 오랜 세월 여왕의 신임을 받아온 실세였던 벌리 경과 그 무렵 새롭게 여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젊은 에식스 백작의 힘겨루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당대에 이미 천재로 일컬어지던 프랜시스 베이컨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벌리 경은 자신의 처조카이지만, 재능이 뛰어난 베이컨이 자기 아들을 능가하게 될 것을 경계했다. 반면에 에식스 백작은 베이컨을 여왕에게 검찰총장으로 천거하는 열렬한 후원자였다. 벌리 경의 반대로 그가 검찰총장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자, 그 보상으로 1,800파운드에 달하는 자신의 영지를 증여하기도 했다.
리튼 스트레치는 에식스 백작이 무고한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는 짓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아무리 고귀한 정신이라 해도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증오와 귀족으로서의 애국심으로 왜곡된 시야를 벗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몇 가지 사소하고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 에식스 백작은 로페즈 박사가 포르투갈의 첩자라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정치적 경쟁자인 벌리 경이, 그리고 여왕조차 그의 주장을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질책하자, 그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간다. 당시의 불완전한 사법체계에서, “유죄의 증거는 공정하고 논리적인 절차를 통해 차근차근 수집되는 것이 아니었다. 증거란 스파이나 날조 전문가나 고문에 의해서만 수집되었다.(…) 당시의 가장 현명하고 유능한 법관들인 베이컨이나 월싱엄까지도 자신들이 수집한 증거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 사실은 자신들이 조작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엘리자베스와 에식스’, 리튼 스트레치, 나남출판)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베이컨은 바로 그 베이컨이다.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네 가지 우상으로 정리해서 엄정한 이성을 강조하던 베이컨. 그는 자신의 오류는 인식하지 못한 것일까, 안 한 것일까.
로페즈 박사는 당시 관습대로 공개처형을 당했다. 교수대에 매달았다가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세, 내장 적출, 사지 절단이 이어지는 잔혹한 형벌이었다. 마치 연극 구경을 하듯 사람들이 몰려들어 광란과 환호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 여왕의 총애를 잃은 에식스 백작도 대역죄로 몰려 참수를 당한다. 그때 그를 문책한 사람은 그가 열렬히 후원했던 베이컨이었다. 제임스 1세의 시대에 베이컨은 검찰총장을 거쳐 대법관 자리에 올랐으나, 예순 살 무렵 뇌물죄로 고발당한다. 그는 뇌물이 아니라 선물을 받은 것이며, 자신의 ‘의도는 순수했고 선물을 받은 것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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