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들 불가역적 지구화 추세 예측에도
미중, 한일 등 탈지구화 치킨게임 벌여
우리의 무비판적 ‘지구화’전략 성찰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일본 오사카 주요20개국(G20) 회의 도중 양자회담장에서 만나 악수하며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오사카=AP 연합뉴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지기 시작해야 비상을 시작한다.”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생기면 사후적 해석이나 하는 지식인의 운명을 비꼰 헤겔의 유명한 경구다. 개인적으로, 학문을 직업으로 해서 ‘지식인’연하고 살아온 만큼 주기적으로 헤겔의 이 경구를 절감하게 된다. 요즈음이 바로 그러하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가 몰락하자 후쿠야마라는 학자는 “역사는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내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이로부터 25년이 되지 않은 현재, 세계의 화두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극우포퓰리즘의 부상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다.

지구화도 마찬가지다. 소련 동구 몰락 후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인터넷 발달 등으로 전지구적 정보 교환과 커뮤니케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이제 ‘지구화’는 되돌릴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0년대 초 각광을 받았던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이제 세계는 미국 같은 강대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났고 “국민국가가 점차 세계시장의 단순한 장애물로 나타나고” “단일한 지배 권리하에 통합된 일국적 기관들과 초국적 기관들의 새로운 형태”인 ‘제국’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사태들은 이 같은 분석과 예측들을 휴지통으로 보내버리고 있다. 지구화로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에 기초해 집권한 트럼프로부터 시작된 자국중심주의와 중상주의적 기조는 전 세계로 번져 가고 있다. 이제 세계는 지구화가 아니라 ‘탈지구화’와 ‘글로벌 치킨게임’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 같다.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은 양쪽이 절벽이고 차가 한 대밖에 달리지 못하는 좁은 길에서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는 게임을 했다. 겁이 많은 쪽이 먼저 브레이크를 밟으면 지는 것이고 양쪽이 상대방이 먼저 브레이크를 밟겠지 하고 ‘겁 없기 경쟁’을 하며 서로 달려오다가는 정면충돌해 공멸하는 것으로 이를 ‘치킨게임’(‘치킨’은 속어로 ‘겁쟁이’란 뜻이다)이라고 하는데, 요즘의 국제관계가 그러하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놓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 브렉시트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영국과 유럽연합의 줄다리기가 그 예다. 급기야 아베 일본 총리가 우리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무역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우리와 일본 사이에도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사태가 이리 발전하자 통상전문가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까지도 지금 세계는 “지구화와 다자 차원의 국제분업 체제로부터 자국중심주의로 전환하는 시기”, 즉 ‘탈지구화의 시기’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지구화가 불가피한 세계적 추세이며 자원이 부족한 만큼 통상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계속 경제를 개방하고 ‘지구화’해 왔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실력이 동반되지 않은 지나친 개방과 세계화(지구화)전략으로 1997년 비극적 경제 위기를 겪고도, 이후 들어선 소위 ‘민주정부’에서도 이 같은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베의 무역전쟁 선포로 우리가 겪는 혼란이 보여주듯, 국제적 변화에 우리 경제는 너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개선이 필요하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느니,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고 국민국가는 세계시장의 단순한 장애물에 불과한 지구화와 제국의 시대가 왔다”느니 하는 세계석학들의 이야기들은 20년 만에 현실에 의해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이들 석학들의 공상 같은 주장들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지나치면 반대로 흘러간다”는 우리 선조 민초들의 지혜가 더 설득력 있게 내게 다가온다.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차차차.”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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