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등 北 경제 분야서 군인들이 핵심 역할
적극 대응으로 민심 결속시키려는 의도인 듯
태풍 ‘링링’이 북상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사회의를 소집했다. 자연재해 피해 대비는 물론 건설 등 경제 분야 전반에서 군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적극 대응으로 위기를 통치력 입증 기회로 만들고 민심을 결속해 보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6일 밤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전반적 지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 13호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한 비상확대회의를 9월 6일 오전 긴급 소집하고 국가적인 비상 재해 방지 대책을 토의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비상확대회의를 지도하셨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통신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한반도로 빠르게 북상하고 있는 13호 태풍의 강도와 예상 경로, 특성, 예상 피해 지역ㆍ규모 등을 분석하고 국가적인 긴급 비상 대책들이 어떤 게 있는지 토의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안일한 인식”에 사로잡힌 당과 정부가 태풍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하는 한편 군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북한이 태풍 대비 목적으로 중앙군사위까지 소집한 건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이 과거 나선시 홍수 때도 중앙군사위를 소집한 적이 있지만, 홍수 발생 뒤 피해를 집계하고 복구 대책을 지시하기 위해서였지 이번처럼 선제 대응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
그만큼 이번 태풍의 파장이 심각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 인식의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관영 조선중앙TV는 이날 태풍 링링의 이동 경로가 과거 ‘볼라벤’과 유사하다며 “태풍 13호도 지난 시기보다 더한 인적 물적 피해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 집권 직후인 2012년 8월 북한을 관통하며 큰 피해를 준 ‘볼라벤’의 학습 효과인 셈이다. 당시 북한에서는 태풍과 집중 호우로 약 300명이 사망하고 약 600명이 부상ㆍ실종됐으며, 살림집(주택) 8만7,280여가구의 파괴ㆍ침수, 이재민 29만8,050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불가피한 자연 재난을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심산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이번 태풍으로 과거처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식량난과 대북 제재로 이미 어려운 북한 경제가 더 타격을 입으면서 민심이 이반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선방한다면 내부 결속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을 이행하기 어렵고 이는 ‘하노이 트라우마’ 이후 어렵게 복원한 통치력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며 “반면 이를 잘 극복할 경우 통치력을 다시 한번 입증할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인민군대가 자연재해로부터 인민의 안녕과 생명, 재산을 지켜내는 것을 응당한 본분, 마땅한 사명으로 여기고 맡겨진 성스러운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며 “누구도 대신 못할 나라의 억센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이는 북한 사회에서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단기간에 일사불란하게 동원할 수 있는 조직이 사실상 군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해석이다. 건설 장비 등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젊은 노동력이 풍부한 군이 각종 건설 현장에 동원되고, 태풍과 홍수 때도 피해 복구에 투입되는 형편이다.
태풍 ‘링링’은 7일 오후 4시쯤 북한 황해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을 관통한 뒤 일요일인 8일 이른 새벽 중국 지역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남한의 합동참모본부 의장에 해당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이 리영길에서 박정천 포병국장(육군 대장)으로 교체됐다. 박정천의 전격 승진은 올 4월부터 김 위원장 지휘 아래 본격 진행된 신형 단거리 발사체 무기들의 시험 발사가 잇달아 성공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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