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1) 없는 키움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젠 팀의 간판타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까닭이다. 데뷔 첫해인 2017년 ‘고졸 신인 최초 3할 타율(0.324)’, ‘신인 최초 전 경기 출전(144경기)’, ‘데뷔 시즌 역대 최다 안타(179개)’ 등 역대 신인 선수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운 뒤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2년 차였던 지난해에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109경기 459타석에 그쳤지만, 타율은 오히려 한 뼘 성장(0.355)하며 골든 글러브와 국가대표팀 승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올해도 8일 현재 리그 타격 5위(0.335), 득점 4위(84점)로 맹활약 중이다. 정확한 콘택트 능력과 빠른 발을 활용해 2루타는 30개(6위)를 쳤고, 3루타는 리그 1위(10개)다.
특히 시즌 안타 180개(1위)로 두산 외국인타자 페르난데스(175개ㆍ2위)와 타이틀을 다투고 있다. 이정후는 2017년에도 이 부문 3위(179개)에 오른 적이 있다. 이정후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페르난데스는) 타석에 들어서면 어떤 공이든 다 쳐낼 것 같은 포스를 지닌 훌륭한 선수다”라며 “그를 통해 저 역시 성장하고 있다. 누가 최종 타이틀을 갖게 되든 서로 잘했다고 축하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올 시즌 삼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17년에도 삼진은 67개(552타수)로 적었지만, 지난해 58개(459타수), 올해는 39개(537타수)밖에 안 된다. 이정후는 “어느덧 리그 3년 차다. 상대 투수별로 볼 카운트 유불리에 따라 어떤 결정구를 던질지 조금씩 느낌이 오는 것 같다”면서 “그러다 보니 타석에서 노림수를 갖게 되고 삼진 비율이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프리미어 12 대표팀 승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한국의 전력 분석을 위해 방한한 일본 야구대표팀 이나바 아츠노리(47) 감독 역시 지난 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키움-삼성 경기를 지켜본 뒤 일본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정후는 틀림없이 대표팀에 발탁될 것”이라며 “스윙이 간결하고 배트 컨트롤이 좋다”라고 평가했다. 이정후는 “공교롭게도 (키움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에서 프리미어 12 경기를 치른다”면서 “최고 선수들이 모여서 훈련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 꼭 대표팀에 발탁되고 싶다”라고 의욕을 보였다.
이정후도 시즌 초반엔 고전했다. 타율이 한때 2할 초반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당한 어깨 부상 여파가 컸다. 당시 9회 말 뜬 공을 잡다 어깨 부상을 당해 중도 하차했다. “어깨 수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몸 상태가 100%일 것이라 생각하고 경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정후는 “안 아팠을 때의 몸 상태로 경기를 준비하다 보니 컨디션이 더 떨어지면서 악순환을 겪었다”면서 “날씨가 더워질 때까지만 기다리자 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몸도 컨디션도 조금씩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올 시즌 도루는 13개뿐이다. 실패도 7개나 된다. 그는 “(도루) 욕심이 많은데 올 시즌 간발의 차로 아웃된 게 너무 많다”며 아쉬워했다. 역시 어깨 부상 트라우마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정후는 “예전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는데 올 시즌엔 (부상 위험 때문에)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지난 부상 통증과 재활 과정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다”면서 “부상 후 첫 시즌인 만큼 올해는 적응 단계라 생각한다. 다만 올 겨울에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정후를 얘기할 때 ‘절친’ 고종욱(30ㆍSK)과의 케미를 빼놓을 수 없다. 입단 이후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룸메이트로 함께 지낸 사이다. 고종욱은 올 시즌 SK로 이적한 후 타율 0.331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고종욱은 신인 이정후에게 “어린 선수들이 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 항상 프로답게 행동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정후는 “아마추어 선수였던 나에게 ‘프로 마인드’를 심어준 정말 고마운 은인”이라며 “지금은 다른 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기분이 좋다”라며 웃었다.
키움의 올 시즌 가을 야구는 확정적이다. 플레이오프 직행이냐,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느냐의 순위 다툼만 남았을 뿐이다. 이정후는 지난해 꿈꿔왔던 첫 ‘가을 야구’를 맞았지만, 중도 하차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유독 결기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의 가슴 떨림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정후는 “가을 야구는 경험을 쌓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성적을 내는 자리다”라며 “시즌을 마치고 ‘잘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성적을 내겠다”라고 다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차승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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