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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리포트]’헤어수트’를 만드는 독특한 스타트업 ‘매치’

입력
2019.09.09 04:40
수정
2019.09.09 09:4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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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반은정 대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쓴 CEO의 새로운 도전”

※한국일보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세상의 변화를 꾀하는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달라질 우리의 삶을 짚어 봅니다.

“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올해 2월 출발한 스타트업 기업 ‘매치’의 반은정 대표는 독특한 이력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바람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았지만, 기업보다 개인이 흥미거리로 부각되는 게 싫어 거절해 왔다. 기업은 개인이 아닌 직원 모두의 회사인 만큼 개인의 그림자가 커지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반 대표의 변이었다.

어찌 보면 국내에 없던 방식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한 사업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떤 사업이길래 그토록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지 그를 만나 들어봤다.

반은정 매치 대표는 스타일 가발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이를 ‘헤어 수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반은정 매치 대표는 스타일 가발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이를 ‘헤어 수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헤어 수트를 아시나요”

매치는 반 대표가 ‘헤어 수트’라고 부르는 가발을 만드는 회사다. 가발에 굳이 헤어 수트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머리카락이 빠진 자리를 가리는 기능 외에 세련된 패션 스타일을 가미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짜 머리라는 뜻의 단어가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시대 분위기와 맞지 않다고 봤다. “가발이라고 하면 우리 스스로 가짜 상품을 판다는 말이잖아요. 가발을 파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모두를 격하시키는 표현이에요.”

매치의 ‘헤어 수트’는 일반 가발과 어떻게 다른가. 반 대표는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 품질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가발 안쪽에 부착해 머리에 닿는 부분인 망(헤어캡)은 방직 산업이 발달한 영국산을 사용한다. “영국산 망은 착용감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하며 쉽게 망가지지 않아서 중국산보다 20, 30배 비싸요. 피부에 닿는 부분이어서 중요한데 그 동안 가발업계는 비싸서 잘 쓰지 않았죠.”

이렇게 구입한 영국산 망에 5만 가닥의 머리카락을 해외 공장의 숙련공들이 6주 동안 일일이 손으로 심어 제품을 만든다. 머리카락도 자르기 전까지 염색 등 화학 처리를 한 번도 받지 않아 건강하고 가장 비싼 ‘버진 헤어’라는 최고 등급의 사람 머리카락을 사용한다. 여기에 손질을 해놓으면 모양이 유지되는 특수 소재인 고가의 형상기억섬유로 만든 인조모를 섞는다.

이와 함께 착용자의 실제 머리카락과 가발을 연결해 고정하는 장치인 클립도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금속 클립을 사용해 무겁고 눌리거나 당김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금속 클립은 공항의 보안 검색대를 지날 때 소리가 울릴까 봐 공항 출입이 잦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매치에서 도입한 플라스틱 클립은 아예 그런 우려가 없다. “플라스틱 클립을 부착한 가발을 직접 쓰고 미국, 유럽, 일본의 주요 공항을 다녀봤는데 한 번도 보안 검색대에서 소리가 울리지 않았어요. 더 이상 가발을 쓰고 보안 검색대를 지날 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에 동종업계에서 오래 일한 전문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이 합류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헤어 스타일로 가발을 만든다. 주요 고객층도 아예 30대 남성으로 잡았다. “요즘은 30대때 탈모가 시작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30대 전문직 남성들은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이왕이면 세련된 제품을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만큼 대량 생산되는 저가 제품을 꺼리죠.”

30대를 겨냥한 또 다른 이유는 탈모가 시작되면 되도록 젊은 나이에 가발을 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뒤 가발을 쓰면 사람들이 대번에 알아봐요. 탈모가 시작될 때 가발을 사용하면 원래 머리카락과 섞여서 자연스러워 사람들이 잘 모르죠.”

그래서 매치는 기발한 방식으로 가발을 생산한다. 우선 소비자 접점을 가발가게가 아닌 유명 헤어숍 브랜드 마제스티 바버샵과 손잡고 서울 경기 지역 일부 백화점 및 쇼핑몰에 들어간 마제스티 바버샵 6곳에 VIP룸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헤어 디자이너들에게 머리 손질을 받으면서 한꺼번에 머리 모양에 맞는 가발까지 맞춤 주문할 수 있다. 이용하려면 헤어 수트 매치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하면 된다.

이를 위해 가발 스타일리스트를 파견하고 헤어 디자이너들에게 특별 가발 교육까지 시킨다. “기존 가발가게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후미진 골목 안쪽이나 건물 꼭대기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밝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젊은 층은 찾지 않죠. 백화점 내 헤어숍에서 가발까지 다루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어요. 또 VIP룸이라는 별도 공간에서 상담과 머리 손질을 받아 비밀도 보장되죠.”

반 대표는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이 헤어숍 브랜드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가발을 원하는 탈모인들까지 헤어숍에 올 수 있으니 추가 매출이 발생하죠.”

독특한 마케팅 전략은 처음부터 해외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헤어숍과 손잡고 맞춤 가발을 판매하는 방법은 해외에서 효과가 클 거에요. 그래서 외국인 모델들과 10편의 홍보 영상을 미국에서 촬영했죠.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함께 할 파트너들을 찾고 있어요”

각 소비자들의 특성에 맞는 가발을 제작하는 만큼 완성까지 6~8주 걸린다. 아직까지 가발은 숙련공의 손기술이 중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구한 최고 소재의 제품을 강력한 제휴 관계인 해외의 오랜 역사를 지닌 가발 장인들에게 전달해 제작한다. 그만큼 적시에 소재를 구해서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들은 이를 공급망 관리(SCM)라고 부르며 제품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 꼽는다. 한일 무역 갈등에서 보듯 적시에 소재 조달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따라 제품 생산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 대표의 남다른 이력이 빛을 발한다.

반은정(왼쪽에서 두 번째) 대표와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가발 디자인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 매치 제공
반은정(왼쪽에서 두 번째) 대표와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가발 디자인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 매치 제공

◇공군 장교에서 보잉의 30대 임원까지 승승장구

반 대표는 공군사관학교 시절까지 포함해 공군에서 9년을 몸담고 대위로 퇴역했다. 공사를 간 것은 고교 시절 비행기로 글로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공군에서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은 항공기 부품의 수급을 관리하는 군수장교였다. 즉 군의 항공기 부품 SCM 담당이었다. “전쟁사를 공부해 보니 승패를 좌우한 것은 군수였어요. 그래서 군의 핵심은 군수라고 생각했죠.”

퇴역 후 반 대표는 30대 초반에 보잉 한국 지사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일했다. 보잉에서도 항공기 부품 수급 체계를 관리하는 SCM을 맡았다. 그렇게 9년을 근무한 보잉을 그만둔 것은 내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년 없는 보잉의 고액 연봉을 뿌리치고 여러 대기업들의 영입 제의를 마다한 채 반 대표가 선택한 곳은 대형 헤어숍 프랜차이즈였다. 헤어 관련 시장을 알기 위해 고른 전략적 선택이었다. “보잉 시절 시장조사를 해보니 미용 사업이 유망해 보였어요. 그 중 헤어 분야는 화장품만큼 발달이 덜 됐기에 여기에 콘텐츠와 기술을 접목해 보기로 했죠.”

헤어숍 프랜차이즈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며 싱가포르에 매장을 개설하는 등 해외 시장을 넓히는 일을 맡았다. “그렇게 헤어 사업을 파악하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이후 헤어숍 프랜차이즈를 그만둔 뒤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1년 동안 가발 가게를 해봤다. 새벽에 출근해 매장을 청소하고 추운 겨울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렸다. 그러면서 가발 사업의 틈새를 발견했고 여기를 뚫기 위해 매치를 창업했다.

반은정 매치 대표가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구상 중인 SNS 마케팅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반은정 매치 대표가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구상 중인 SNS 마케팅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그 동안의 삶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반 대표는 자신의 인생을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정의했다. 군에서는 소수인 여성 장교였고, 그 중에서도 몇 안 되는 군수장교였다. 보잉 시절 미국 본사 회의에 참가해 보면 가장 나이 어린 임원이었고 역시 몇 안 되는 여성에 소수의 아시아인이었다. “돌아보면 도전하듯 남들이 가지 않던 길을 걸었어요. 그런 삶이 가발 사업과 잘 어울려요. 탈모인들도 마이너리티라고 느끼거든요. 음지에 있는 마이너리티를 양지에 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발이에요.”

탈모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제안을 하겠다는 것이 반 대표의 사업 모토다. 그래서 항상 탈모인들 입장에서 어떤 점이 아쉽고 고통스러울 지 고민한다. 그들의 고통을 상술로 활용하지 않기 위해 가발 착용 전후를 비교하는 광고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전후 비교 사진을 싣는 광고는 가발 판매에 효과가 크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짓이에요. 그래서 고객 후기에도 그런 사진을 올리지 말라고 하고 있어요.”

반 대표의 우선 목표는 국내 가발 시장에서 3위 안에 드는 것이다. “국내 탈모 인구는 1,000만명이에요. 이중 심각한 탈모 인구는 350만명이구요. 시장 규모만 4조원이고 매년 20, 30%씩 증가해요. 우선 국내에서 자리 잡은 뒤 다양한 패션업체들과 협업으로 해외까지 적극 공략할 생각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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