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과 몽골 사이에 있던 작은 나라 탄누투바(1921~1944)의 우표. 유목민 나라답게 낙타가 그려져 있다. 흐름출판 제공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비에른 베르예 지음ㆍ홍한결 옮김
흐름출판 발행ㆍ432쪽ㆍ2만5,000원

19세기 러시아제국은 발칸반도에 눈독을 들였다. 당시 발칸반도의 지배자는 오스만제국이었다. 오스만제국의 힘이 약해지자 러시아는 1877년 지금의 불가리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을 침범해 점령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세력이 커지는 러시아가 못 마땅했다. 러시아의 점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독일이 중재에 나섰다. 결국 북쪽 불가리아 땅 일부는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놓이고, 남쪽 마케도니아는 오스만의 통치를 계속 받았다. 러시아와 오스만의 대립을 막기 위해 남과 북 사이 별도의 자치 지역이 만들어졌다. 1878년 동(東)루멜리아라는 나라가 설립된 배경이다.

오로지 열강의 잇속과 계산에 따라 만들어진 나라 동루멜리아는 30년간 지속됐다. 인구는 97만명 가량. 오스만제국이 관할했는데, 총독은 기독교인이 맡았다. 자치국의 꼴을 갖춘 곳이니 나라가 해 볼만 한 여러 행정업무를 꾸렸다. 우표 발행이 그 중 하나였다. 1881년 첫 발행된 우표에는 터키어와 그리스어, 불가리아어, 프랑스어가 나란히 쓰였다. 오스만제국 관할인 나라라 초승달 그림이 그려졌다. 조그마한 우표 한 장이,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신생국 동루멜리아의 처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림 2 호주 남쪽 섬 밴디먼스랜드에서 1855년 만들어진 우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모델이다. 흐름출판 제공

이젠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우표는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기 좋은, 작은 창이다. 정보(편지)를 체계적으로 이동시키고, 정보 전송에 명확한 값을 매긴 우편시스템은 제국주의가 고안해낸 발명품 중 하나다.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경영하는데, 우표는 여러모로 기여했다. 오래된 우표에는 제국의 탐욕과 열강의 대립, 식민지의 생성과 발달, 쇠퇴가 스며 있다. 노르웨이의 우표수집광이 쓴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은 제국주의의 산물이었다가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나라의 한 때를 희귀 우표를 통해 복원한다.

3년 동안(1864~1867) 지구상에 존재했던 슐레스비히도 국가간 다툼 끝에 생성된 나라다. 덴마크 남부 슬레스비 지역은 1700년대 이전까지는 어느 나라에 딱히 속해 있지 않은 곳이었다. 덴마크계와 독일계 주민이 섞여 살다 1700년대초부터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 독일계 주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프로이센이 개입하면서 갈등이 촉발됐고, 전쟁이 벌어졌다. 프로이센은 슬레스비를 점령해 슐레스비히라는 독립국을 만들었다. 1865년 슐레스비히에서 발행된 우표는 실용적인 독일인의 영향을 받아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타원 안에 액면가(우표값)가 적혀있는 식이다. 국가는 3년 만에 없어지고, 국민도 사라졌지만 우표는 남아 시대를 증언한다.

책은 우표에 얽힌 사연을 뛰어넘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여러 대목들을 전한다. 희귀 우표가 만들어졌던 시대적 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수탈과 착취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432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