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 등을 논의했으나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동방경제포럼 참석 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아베 총리는 이날 러시아와 영토 분쟁 중인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에서의 양국 간 경제협력을 강조했으나 교착상태를 타개할 실마리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지난 6월 회담 이후 2개월 사이 북방영토에 거주했던 주민들의 성묘 등 합의사항이 착실히 실현되고 있는 점을 긍정 평가한다”며 “오늘은 러일 평화조약 문제, 양국 간 문제, 국제적인 과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미래를 향해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양국관계는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와 향후 단계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은 지난해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의 ‘전제조건 없는 평화조약 체결 논의’ 제안으로 급물살을 탔다. 이후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1956년 체결된 소일 공동선언을 토대로 평화조약 체결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소일 공동선언에 명기된 “평화조약 체결 이후 4개 섬 중 시코탄(色丹)과 하보마이(歯舞)를 일본에 인도한다”는 문구를 근거로, 4개 섬 일괄 반환에서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의 우선 반환으로 선회하는 등 외교적 성과를 얻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 내 쿠릴 4개 섬 반환을 반대하는 여론이 70% 이상이고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협상은 교착상황에 빠졌다. 러시아는 3월 에토로후(擇捉)섬과 구나시리(國後)섬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영토 반환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일본이 미국과 군사적 유대를 맺고 있는 현실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양국 간에 2차대전 종전의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 앞서 화상중계를 통해 시코탄섬에서 열린 수산물 가공 공장 가동식에 참석했다. 쿠릴 4개 섬에 대한 실효 지배를 강조하면서 일본을 견제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지만, 어떤 수준으로 언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양국 간 평화조약 체결 협상이 당분간 난항을 계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전후 외교의 총결산’ 차원에서 러일 평화조약 체결과 쿠릴 4개 섬 반환을 임기 내 정치적 유산으로 남기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일본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양자조약을 근거로 쿠릴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쿠릴 4개 섬이 승전국인 러시아에 합법적으로 귀속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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