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이 11조원 넘게 늘어나 올 들어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예금 금리의 꾸준한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에 최근 파생금융상품 대규모 투자손실 우려까지 겹치면서 안전한 투자처로 돈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5개 시중은행(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의 8월 말 정기예금 잔액은 총 651조9,364억원으로 전월 말(640조3,823억원)보다 11조5,541억원 늘어났다. 이들 은행의 올해 정기예금 월간 증가폭이 10조원을 넘은 건 처음이다. 전월 대비 증가율도 1.8%로 올 들어 가장 높았다. 은행별로도 5곳 모두 전달보다 정기예금 잔액이 늘어났다. 국민은행이 3조7,404억원으로 증가액이 가장 컸고, 농협은행(3조448억원) 우리은행(2조3,511억원) 신한은행(1조4,195억원) 하나은행(9,983억원) 순이었다.
은행권에선 지난달 정기예금 급증을 이례적 현상으로 여기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8월은 여름 휴가철인 데다 소비 대목인 명절을 앞두고 있어 정기예금이 대폭 늘어날 계절적 요인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더구나 은행 예금 금리는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1년 만기 정기예금(신규취급액 기준) 금리는 지난해 12월 연 2.17%를 고점으로 꾸준히 떨어져 7월 1.81%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은행 예금에 돈이 몰린 건 그만큼 위험회피 심리가 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중 무역분쟁 악화, 일본의 경제보복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확대된 데다 최근 은행권을 중심으로 판매된 파생결합펀드(DLF) 상품이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높은 수익률을 좇기보다는 금리가 낮더라도 안전한 투자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원들이 펀드의 ‘펀’자만 꺼내도 고객들이 ‘돈 까먹는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다 보니 큰돈이 정기예금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기관이나 법인이 여유자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일단 정기예금에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위험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거부감이 심한 터라 정기예금 쏠림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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