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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닭이 한 마리인 이유

입력
2019.09.0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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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업체는 피나는 경쟁을 했고, 그 결과 누구나 맛있다고 하는 현재의 치킨요리가 탄생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외국에서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다. 구글검색이라도 해보시라. ‘코리언 치킨’은 국제 요리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는 독자적인 요리 기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치킨 업체는 피나는 경쟁을 했고, 그 결과 누구나 맛있다고 하는 현재의 치킨요리가 탄생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외국에서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다. 구글검색이라도 해보시라. ‘코리언 치킨’은 국제 요리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는 독자적인 요리 기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배달 애플리케이션은 이제 거의 독자적 산업의 단계라 해도 된다. 시장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으며, 전통적인 방문 식사의 규모를 위협할 정도에 다다르고 있다. 배달이 편의성에 머무르지 않고 배달 자체가 색다른 미식의 차원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건 배달해야 더 맛있어’라는 말이 으레 나온다. 지금 어린 세대의 음식에 대한 추억은 어쩌면 배달에서 출발할지도 모른다. 그런 배달 음식의 선두주자가 치킨이다. 치킨은 ‘치킨느님’이며, 일상식인 동시에 특별식이기도 한 기묘한 위치에 있다. 과거 아버지의 늦은 귀가와 특별한 선물이었던 ‘통닭’은 ‘치킨’이라는 이름이 되면서 독립된 산업이자 절대 우월한 음식이 됐다. 아무도 치킨의 위대함에 딴지를 걸 수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닭은 육계라고 부른다. 고기로 쓰기 위해 기른 닭이란 뜻이다. 알을 얻기 위한 산란계와는 크게 구별되는 용도다. 물론 산란과 고기 모두를 위한 닭도 있다. 이런 닭은 국내에서는 사실상 거의 기르지 않는다. 닭 공급 산업이 이미 완벽하게 산업화돼 효율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육계는 보통 30일이면 시장에 나온다. 9호, 10호, 11호니 하는 크기 분류가 통용되는데 10호(1㎏ 내외)가 보통 표준이다. 더 큰 닭은 11호, 12호로 숫자가 올라가는데 대개는 같은 무리에서 큰놈과 작은놈의 존재가 호수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이 10호 내외의 닭 크기에 길들어 있다. 여름 삼복 대목의 삼계탕용 닭만 더 작은 닭으로 이용할 뿐이다. 이런 10호 내외의 닭을 우리가 먹는 것은 몇 가지 이점이 있어서다. 사료 효율이 좋다. 효율은 산업의 이익이지만 곧 소비자 이익이 되기도 한다. 더 키우면 사료 효율이 낮아진다. 이런 사정이 있으니 말도 많다. 우리 닭은 국제적으로 작아서 맛이 없다고 주장한 이가 나왔다. 그러자 “무슨 소리냐. 치킨으로 튀기기에 그 정도 크기가 제일 알맞다”는 반박이 나왔다. 또 “닭을 더 키우면 한 마리를 다 먹고 싶은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나는 반댈세”하는 대꾸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우리 닭 크기가 좀 작은 건 맞다. 세계적으로 주요 닭의 무게가 우리나라처럼 10호 크기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건 많지 않다. 나는 우리 닭이 작은 것에 비판적이지 않다. 산업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설정됐다 해도, 튀기고 볶는(닭볶음탕)게 주종인 우리 닭 요리에서 그 정도 크기는 적당하다. 어떤 이는 닭이 너무 작아서 맛이 없으니 양념을 잔뜩 넣은 튀김옷을 입히고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기도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양념해서 맛이 좋아지는 게 왜 문제인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사 작은 닭의 맛이 모자란다 해도 오히려 양념 잘해서 튀기니 맛이 좋아졌다면 칭찬할 일 아닌가. 그런 닭을 기준으로 치킨 업체는 피나는 경쟁을 했고, 그 결과 누구나 맛있다고 하는 현재의 치킨요리가 탄생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외국에서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다. 구글검색이라도 해보시라. ‘코리안 치킨’은 국제 요리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는 독자적인 요리 기술이다. 자랑은 못 할망정 지금 우리 치킨을 마구 씹지는 말아야 한다.

튀기지 않고 ‘닭도리탕’으로 볶기에도 이 크기는 아주 적당하다. 양념이 맛을 보완해주며, 한 마리의 다채로운 부위를 한 주문 단위(한 냄비)에 다 맛볼 수 있다. 닭을 2.5㎏, 3㎏으로 크게 내면 설사 그것이 맛이 좋다고 한들 우리들 주머니돈의 깜냥으로는 ‘여기 닭 4분의 1마리요!’해야 하는데, 그걸로 만족하겠나. 게다가 닭을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연료 소모도 많아진다. 세상에는 알고 보면 속사정이 다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저 알고는 먹자는 말이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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