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개원 인터뷰]
“여야가 여우와 두루미처럼 대립만… 행정부 비판ㆍ견제 무너져
한일은 김대중ㆍ오부치 선언을 문재인ㆍ아베 선언으로 전환해야”
“여야가 합작해 스스로 국회를 능멸했다. 여우와 두루미처럼 상대가 먹을 수 없는 음식만 내놓고 정치의 실종을 자초했다. 계속 이런다면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문희상(74) 국회의장은 4일 여야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극한 대치 끝에 청문회 무산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일을 두고 “국회가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다른 모두가 국회를 업신여기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며 이같이 일갈했다.
문 의장은 이날 국회의장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거듭 ‘국회의 존재 이유’를 되짚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브레인으로,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한국 정치사의 질곡을 통과해 온 그는 “이렇게 무력감, 자괴감을 느낀 시기도 드물었다”며 여야 모두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촛불혁명은 여당 혼자 이룬 것이 아닌 만큼 모든 정치권이 합심해 촛불정신 제도화와 완성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연신 강조했다. 일본통인 문 의장은 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잇는 문재인·아베 선언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이 경우 한일관계 회복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김영화 정치부장 yaaho@hankookilbo.com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종착지를 향해 가는 20대 국회를 ‘처연한 심정’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전반기에 20대 국회는 역사적 일을 해냈다. 의원 300명 중 234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했다. 엄청난 일이다. 헌법 테두리 안에서 소위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의에 이어 헌법재판소에서 여당 법제사법위원장이 검사 역할을 했다. 만장일치로 탄핵 결정이 됐다. 합헌적 절차에 따라 정권이 바뀌는 계기를 마련한 국회였다. 민의에 가장 충실한 국회였다. 하반기 국회에는 그 민의를 제도화해야 하는 숙명적 책임이 주어졌다. 첫째가 개헌이었다. 대통령은 법률을 고치고, 헌법 개정안 골자도 제안했다. 하지만 국회는 아무것도 안 했다. 법률 단 한 개를 통과시키지 않았다.”
-개혁 입법도 성과가 부진했다.
“정치개혁, 경제개혁, 검찰 및 사법개혁. 그 중 하나도 못했다. 정치개혁은 국회법, 정당법, 선거법이 골자고, 그 중 으뜸은 선거법이다. 국민의 의사가 득표수대로 의석 수에 반영되는 비례성의 보장이 선거제 개편의 핵심이다. 그걸 시작하려는 마당에 패스트트랙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왜 이것을 합의할 생각을 안 하고 내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선거제를 비롯한 정치개혁이 반드시 가능하다고 본다. 여야 차이도 없다. 국민이 원한다. 정략적으로 당리당략으로 서로 안 되길 바라고 버티면 안 된다.”
-선거제 개혁안은 얼마 전 자유한국당 반대 속에 정개특위를 통과했다. 11월 본회의 통과 전망은.
“난 결국 된다고 본다. 타협안이 마련될 수 있다. 양측 차이가 크지 않다. 다음 선거를 치르지 않을 게 아니라면 결국 타협은 될 거다. (본회의 표결은) 할 수밖에 없다. 법률 절차다. 합의 하는 게 훨씬 낫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다. 일방 처리하면 한국당이 극렬 저항하지 않겠나.
“다 국회법 위반이다. 이미 지난번 사태로 경찰 수사 대상이 되지 않았나. 어리석게 반복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합의안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의원 정수를 10% 늘리면 전체 지역구가 유지된다. 연동형의 취지를 살리면서 풀 수 있다.”
-정수 확대는 반대 여론도 많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에서 의원 1명이 대변하는 유권자 수를 비교해보면, 지금 한국도 500명은 돼야 맞다. 국민의 불신을 받아서 비판이 있지만 300명 자체가 많은 수는 아니다. 전체 국회가 쓰는 비용을 늘리지 않는다면, 10% 정도에서는 조정 가능하다. 보좌관 숫자를 줄이거나, 수당을 규율하는 등 방법은 얼마든 있다. 합의한다면 국민 반대가 크진 않을 거라 본다.”
-선거제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던 손학규, 정동영 대표의 당내 입지가 달라진 상황이다.
“전혀 관계 없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선거제 개혁은 그 분들이 주장해서, 정의당이 주장해서 하는 게 아니다. 대원칙의 문제다. 촛불혁명의 정신이 ‘국민의 득표수에 비례하는 의원’을 원한다.”
-패스트트랙 수사가 진행 중이라, 여야 협의가 더 더디다는 시각도 있다.
“개탄스럽다. 국회가 서로 싸우다 다른 기관이 상황을 좌지우지하게 된 정치의 실종이 개탄스럽다. 쥐를 잡는 데만 눈이 밝아 독이 깨져도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다. 빨리 고쳐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검찰이 공천권을 갖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패스트트랙 고소ㆍ고발 사태를 풀 정치적 해법이 있나.
“입법적 해결도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 자체를 개편할 수도 있다. 그러면 소급은 안 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정상 참작이 되지 않겠나. 이미 수정된 법을 억지로 적용해 구속시킬 검찰이 어디 있겠나.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안 하고 언제까지 대통령, 검찰만 탓할 거냐. 답답하다.”
-안 그래도 정치실종에 대한 우려가 크다.
“우선 자꾸 대통령에게 기대선 안 된다. 국회가 정치를 회복하고 국회에서 합의하면 되지 왜 자꾸 대통령에게 기대나. 국회가 스스로를 업신 여기면 되겠나. 자모인모(自侮人侮), 내가 나를 업신여기니 남도 업신여긴다는 상황이다. 선거제 개혁 과정에서도 왜 국회가 청와대의 뜻을 알고자 하나. 정치인으로 상당한 수모를 느낀다. 삼권분립이 맞나. 청청여여야야(靑靑與與野野),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여당은 여당다워야,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한 조 후보자 ‘셀프 청문회’가 국회를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가 합작해 스스로 국회를 능멸한 것이다. 국회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이러면 행정부를 어떻게 견제할거냐. 의회의 제1기능이 행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 아니냐. 개탄스럽다. 오늘 아침에도 여야 원내대표에게 ‘어떻게든 인사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대오각성해야 한다. 서로 여우와 두루미였다. 상대방이 못 먹는 음식만 내놨다. 가족 전부 포함해서 증인 80명 이게 어떻게 성사되나. 스스로 화를 불러 들인다. 국회가 왜 존재하는지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거냐. 특히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 소리를 듣는다면 삼권분립이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이는 국가기강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임명 결정까지 남은 시한이 촉박한데.
“여야가 합의했으니, 대통령이 무리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임명해도 법 위반은 아니다. 다만 자모인모(自侮人侮) 자훼인훼(自毁人毁) 자벌인벌(自伐人伐)이다. 스스로 업신여기고, 훼손하고, 치면, 남도 그러하지만 스스로 존중하면 남도 존중한다. 여야가 합의하고 국회가 스스로 할 일을 하면 대통령이 그 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고민도 나온다.
“인사청문회법도 손을 봐야 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삼권분립의 취지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청문회법 정신을 유지하면서 개선할 여지가 있다. 도덕성 검증은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국회로 넘어오기 전에 비공개로 하는 등의 다양한 고민 지점이 있다. 관련한 여야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조국 후보자 청문회 논의 중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검찰은 어떻게 보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니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검찰공화국,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세상이 돼선 안 된다. 누구도 원치 않는 세상이다. 야당이라고 그걸 바라겠나. 이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도 손댄다는 정당성도 확보했다.”
-사법개혁은 어떻게 돼야 할까.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후보의 대선 공약에 모두 사법개혁이 담겨 있었다.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을 논하지 않았나.”
-사법개혁안 통과 전망은.
“협의안에 접근해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당리당략에 막혀 있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다. 선거, 공천만 생각해 전전긍긍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제 임기 내에는 확고히 가능하다고 본다.”
-내년 총선 전망은.
“민주주의 기본은 상대성이다. 0점짜리를 평가하는데 옆에 마이너스가 들어오면, 0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선 차악이라도 택해야 한다. 여당이 잘못했다고 해도 저 사람들에게 맡기면 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면 국민들이 찍어주지 않는다. 보수도 깃발을 분명히 하고, 기수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무조건 헐뜯고 트집잡기로 해서는 미래가 없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최근 한일관계가 심각하다.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외교 전반을 크게 보면 ‘한반도 평화 정착’ 등 우리나라를 가운데 놓고 생각해야 한다. 어느 나라를 보고 할 때가 아니다. 미·중·러 중 한 곳을 택해야 안보 경제를 보장받는 냉전체제는 이미 붕괴됐다. 모든 외교의 초점은 국익이다.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한미일 공조를 두 축으로 안보를 챙겨야 한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추후 중 ·러와도 함께 갈 수 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을 본받으라 했는데.
“그렇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문재인·아베 선언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대중ㆍ오부치 선언의 요지는 두 가지다. 과거를 직시하자. 미래 지향적으로 나가자. 이 원칙으로 가면 된다. 일본은 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과 박근혜 정권이 맺은 위안부 합의를 우리 정부가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빠른 시일 안에 만나서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면 좋겠다. 크게 넘고 크게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 정기국회에 임하는 20대 국회의 역할은.
“그간 민생을 돌보는 데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6선 의원을 하며 지금처럼 무력감, 자괴감을 느낀 일은 흔치 않았다. 국민은 특정 세력의 집권을 바란 게 아니라 한국사회 시스템 전반의 대전환을 요구했다. 진영논리도, 촛불정신의 독점도 큰 오판이 될 거다. 여당은 포용의 정치로, 야당은 발목잡기가 아닌 비판과 견제로 본분을 다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엄중한 위기는 국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정리=김혜영 류호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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