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 발표
병원도 불이익… 대형병원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 유도
앞으로 감기나 만성질환 등 가벼운 질환(경증질환)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환자가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 병원도 경증 환자에 대해 지금보다 의료 수가를 낮게 받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벼운 질환은 동네 병ㆍ의원에서 담당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인 ‘문재인 케어’로 지난해부터 자기공명영상(MRI) 등 고가 검사와 2, 3인실 입원비가 급여화되자,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 환자들이 5대 대형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더 가속화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내놓은 대책이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쏠림 현상의 영향으로 정작 시급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의 대기 시간이 길어졌고, 과잉 검사나 진료로 건강보험 재정에도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 발표된 단기 대책은 중증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의 본래 기능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 상급종합병원의 명칭을 아예 ‘중증종합병원’으로 변경하고, 지정 요건에서 입원환자 중 중증환자의 최소 비율을 기존 21%에서 30%로 강화했다. 이 비율이 내년부터 실제로 적용되면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하는 병원이 나올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감기와 같은 경증환자를 진료할 경우 불리하도록 의료 수가나 평가 지원금 체계도 변경된다. 대신 중환자실 등 중증환자 진료비를 적정하게 높여주고, 중증환자 위주로 심층 진료를 시행하는 병원에는 별도의 수가 체계를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환자에게도 불이익이 있다. 상급종합병원보다 지역 병ㆍ의원 이용이 바람직한 외래 경증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본인부담률(현재 60%)를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연간 의료비가 과도할 경우 일정 부분 환급해 주는 본인부담상한제에서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복지부는 이 경우 실손보험이 본인부담금을 보장하는 비율도 줄이도록 금융당국과 협의해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진료 의뢰 체계도 바뀐다. 현재는 환자의 요구만 있으면 의사가 의뢰서를 발급해 주고, 환자가 자신이 선택한 상급병원에 직접 의뢰서를 들고 가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환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병ㆍ의원 의사가 의학적 판단을 통해 상급병원에 직접 의뢰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의사는 의뢰 사유 등 상세한 소견과 정보를 전산시스템을 통해 해당 의료기관에 직접 전달하고 예약까지 연계한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 중 가능한 것은 이달부터 즉시 시행 준비에 들어가 조속히 시행하고, 건강보험 수가 개선 관련 사항들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논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장기 대책은 이달부터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한다. 노홍인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면 중증환자가 치료 적기를 놓쳐 생명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벼운 질환이 있는 분들은 동네 병ㆍ의원을 이용하는 등 국민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복원한다’는 취지를 환영했으나, 진료 의뢰 절차 개선방안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환자가 자신이 원하는 의사나 병원에 보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 의사가 이를 저지하기 힘들다”며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환자의 뜻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환자와 의사 간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할 방안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한 점을 우려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들이 1~3차 병원에서 적정한 진료를 받게 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환자들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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