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동물원에 갔다. 입구에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왕립 스코틀랜드 동물 학회를 ‘멸종 위기종 보전에 헌신하는 자선단체’라고 소개한 푯말이 있었다. 입장료의 10%가 보전에 쓰인다. 대표적인 보전 동물은 스코틀랜드 야생 고양이다. 스코틀랜드의 심각한 멸종 위기종이며 토종 야생동물 중 유일한 고양이과 동물이다. 스코틀랜드에 30~430마리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19년 2월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야생에는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개체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도입’ 없이 보전이 어렵다는 뜻이다. 재도입이란 야생에서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그 종의 원서식지에 도입해 다시 정착시키는 것을 말한다.
개체수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서식지 파괴 및 파편화다. 무엇보다 일반 고양이와의 번식으로 잡종이 태어나 야생 고양이만의 유전자가 사라지고 있다. 2015~2018년까지 조사한 개체군의 20%만이 순수한 스코틀랜드 야생 고양이로 밝혀졌다. 일반 고양이를 통한 바이러스와 기생충 질병 전파도 문제다.
에든버러 동물원은 하이랜드 야생공원과 함께 서식지 외 보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는 정부와 20여개 단체가 함께하는 ‘스코틀랜드 야생 고양이 보전 실행 계획’의 일환이다. 에든버러 동물원에 있는 야생 유전자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확인한 후, 하이랜드 야생공원의 비(非)전시 공간에서 번식시킨다.
스코틀랜드 야생 고양이를 보기 위해 동물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풀과 나무만 보였다. 얼마간을 기다리니 한 마리가 안에서 나왔다. 갈색 털에 검은 줄무늬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룩무늬고양이 같았다. 스코틀랜드 야생 고양이는 줄무늬가 비교적 확실하며 꼬리가 두툼하고 끝이 검다. 전체적으로 털도 더 두껍다. 일반 또는 잡종 고양이는 몸통 줄무늬가 깨지거나 점이 있고 꼬리 등 쪽에 검은 줄이 있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일반 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사람들이 야생 고양이를 착각하고 죽이기도 한다. 야생 고양이는 풀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동물원에서 먹이로 준 죽은 병아리였다. 그 고양이는 바로 먹이를 물고 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나와 주변을 살폈다. 내가 만난 야생 고양이들이 자연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향후 5년 내 스코틀랜드는 인간의 간섭이 적은 서식지를 세심히 택해 일반 고양이 중성화와 백신 접종 완료 후 야생 고양이들을 재도입할 예정이다. 재도입 시에는 IUCN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야생에 적응할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사전에 시험 방사한다. 동물원의 제한된 공간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다가 바로 야생에 던져진다면 이처럼 무책임한 일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야생 개체들보다 생존 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서식지를 떠나 인간에게 가까이 가거나 일반 고양이와 만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서식지와 그들의 야생성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야생 고양이를 풀어준다 한들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삵’이 떠올랐다. 서울동물원은 2014년과 2016년, 동물원 번식 개체 및 구조 개체 7마리를 시화호에 두 번 방사했다. 그중 4마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거나 교통사고를 당해서, 또는 굶어서 죽었다. 2017년에는 생존한 삵의 번식을 확인했다. 이제는 그 죽음과 생존의 과정, 결과, 의미 그리고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때다. 진정한 ‘보전’은 번식에서 끝나지 않고, 풀어주는 것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글ㆍ사진=양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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