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최근 장관 임용을 둘러싸고 불거진 일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 사회는 신계급사회가 된 듯하다. 대를 이어서 지위와 재력이 이어지는 사회. 내가 사는 작은 동네 골목도 그런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걸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서 알게 됐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 지 10년이 넘는다.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안면이 있는 이웃들하고만 데면데면 인사를 나눌 뿐이었는데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산동네 골목에서 밥을 주다 보니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웃들과 자주 부딪혔다. 밥을 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도 부탁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인사성이 늘었다. 뚱한 여자가 싹싹한 캣맘으로 변신하는 순간.
자주 얼굴을 대하다 보니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그중 밥을 주고 있는 내게 가장 먼저 다가와서 말을 붙인 이웃은 중학교에 다니던 남학생이었다. 덩치 큰 학생이 먼저 다가와서 고양이를 좋아한다며 말을 건네서 놀랍고 반가웠다. 그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걸 보면서 내심 뿌듯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날 날,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는데 지방에 있는 회사로 현장실습을 다녀서 잘 올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신문에 종종 등장하는 사고가 기억나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기도 다니기 싫다고 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고양이를 오래 쓰다듬고 있는 걸 바라만 봤다. 며칠 전에는 머리를 깎고 나타나서는 군대 간다는 말을 전했다.
반면 그 옆집, 큰 집에 사는 남학생은 같은 고등학생인데도 늘 밝고 여유로웠다. 체대를 지망하는지 매일 운동을 다녔다. 고양이 밥을 주는 내 옆에서 엄마한테는 비밀이니 말하지 말라며 이런저런 수다 떨기를 좋아했다. 비슷한 나이인데 많이 다른 두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 다니던 핑크색을 좋아하던 꼬마는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어서 엄마에게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서 설명도 하고, 어른들이 다 외면했던 주차장에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구조해서 내게 건넸던 꼬마는 ‘무서운 중2’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양이에게는 다정하다. 공장을 운영하시는 자수성가한 아저씨의 긴 가정사는 며칠 동안 아이들 밥을 줄 때마다 몇 부작으로 나누어서 들었다. 애교라고는 없는 두 아들이 자기한테는 뭐 하나 사준 적이 없으면서 길고양이 간식을 사들고 들어왔다며 기가 막힌다는 젊은 아빠의 귀여운 하소연도 들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주인공인 모리 선생님이 좋은 삶의 기준 중의 하나가 ‘지역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라고 해서 나는 지역 사회 길고양이들의 배를 채우겠다고 다짐했는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다 보니 어쩌다가 사람에게도 좋은 이웃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물론 호의적인 이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밥그릇을 치우거나 태어나 처음 듣는 악다구니를 날리는 이웃도 있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가기도 한다. 세계 최장 시간 노동을 마치고 집에 와서 눈을 붙이려는데 고양이 싸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면 화 나는 게 당연하다. 중성화 수술(TNR)을 다 마쳐서 개체수도 늘지 않고, 싸움도 적고, 밥을 챙기니 쓰레기봉투를 뒤지지 않아서 청결하다고 말해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이해한다. 그래서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밥을 챙긴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길고양이 TNR을 실시한 영향으로 2013년도에 25만마리였던 길고양이 개체수가 2015년 20만마리, 2017년 13만9,000마리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골목에서 길고양이가 싸워서 밤잠을 설쳤는데 이런 수치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짜증이 나는 것과 해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근 동물학대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3년 132건에 비해서 2017년에는 398건으로 세 배로 늘었는데 여기에는 신고되지 않은 길고양이 사건은 빠진 수치이다. 최근 근처 동네에서 철사로 목이 죄어 길고양이가 죽었는데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없어서 신고하지 못했다. 신고한들 경찰의 수사 의지도, 사법부의 판단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약 2년 반 동안 동물학대 사건으로 입건된 1,546건 중 가해자가 구속된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이럴 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동물보호법 조항은 왜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특히 캣맘이 체감하는 길고양이 학대 사건은 급증하고 있고, 학대 유형도 끔찍하다. 누가 봐도 주인 없는 길 위의 동물만큼 만만한 상대는 없다. 개나 고양이에 대한 학대가 더욱 위험한 것은 의인화된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이름을 갖고, 인간 곁에서 생각과 감정의 나누는 존재. 그런 동물을 학대한다는 것은 인간 학대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많은 나라에서 동물학대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고 신고할 수 없는 무고한 존재에게 폭력을 가하고, 타자의 감정을 무시하는 법을 학습하는 과정인 동물학대는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동물학대가 ‘해도 괜찮은 것’으로 용인되는 사회로 두어서는 안 된다.
특히 길고양이 사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역사회에 범인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캣맘들은 죽은 아이에 대한 슬픔을 지우기도 전에 남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바짝 긴장한다. 게다가 동물학대는 성범죄만큼이나 재범률이 높다. 미국의 경우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으며, 성범죄자와 마찬가지로 동물 학대자의 신상을 등록하고 공개하는 주도 늘고 있다. 동물에 대한 폭력, 특히 길고양이에 대한 폭력을 지역 사회의 안전성의 지표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쫓는 언론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에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길고양이 학대 문제도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길고양이는 인간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미 여러 세대 걸쳐 그 마을에 살았던 이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외국의 속담처럼 길고양이를 돌보기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인류학자인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개들의 숨겨진 삶’이란 저서에서 그가 관찰한 여러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중에 한 녀석은 홀로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을 때면 동네 아무 집이나 문 앞에 무작정 앉는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인간의 도움을 받는 것임을 아는 녀석이다. 저자는 개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고 우리는 동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야, 그 동네 살기 좋네” 하고 감탄했다. 반려견을 잃어버린 날 나이 든 아빠가 동네 보신탕 집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기억, 돌보는 길고양이가 하루만 안 보여도 누가 해코지를 했나 걱정하며 쩔쩔맸던 기억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길고양이를 돌보기에 썩 좋은 곳이다. 며칠 전에도 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나서 달려 나갔는데 아랫집 아저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혹시 싸우다가 고양이들 다칠까 봐 걱정이 되어서 나왔다고 했다. 지난 명절 때 앞집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동네 고양이들이 다른 차 보닛에는 올라가지 않고 할아버지 차에만 올라간다고 자랑했다. 20년도 지난 과거의 어느 날, 동네 어디선가 맞는 아이의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아무 것도 못했다. 지금이었으면 바로 신고를 했을 텐데,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땐 방법도 몰랐고, 용기도 없었다. 내가 오늘 모른 척하면 다음 피해자는 나일 수도 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고, 피한 사람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길고양이를 챙기고 많은 이웃을 알아가면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지역 사회가 모른 척하지 않는 다는 믿음, 약자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절실히 느끼게 됐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