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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호남 손녀와 ‘광주일고 정권’

입력
2019.09.04 18:00
수정
2019.09.04 22:5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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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0일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열린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부산·울산·경남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0일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열린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부산·울산·경남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나경원이 한나라당 재선 의원이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중도 사퇴한 것은 40대 후반의 그로선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오세훈과의 당내 경선패배로 꺾였던 그의 야심은 ‘나꼼수’가 제기한 1억원대 피부 시술 의혹 등에 시달리다 박원순 벽 앞에서 다시 무너졌다. 2012년 19대 총선마저 포기하고 실의에 빠진 그를 구한 것은 서울 동작을이었다. 2014년 정몽준의 서울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이곳 재ㆍ보궐 선거에서 그는 야당 단일후보로 나선 노회찬과 맞붙어 힘겹게 재기했다.

□ 2002년 이회창의 권유로 대선 캠프에 합류했던 나경원은 17대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뒤 18대 총선 때 서울 중구에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3년 뒤 왜 동작에 차출됐을까. 작년 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된 그는 올 초 목포 문화재거리 투기 논란을 낳은 손혜원 의혹을 확인하겠다며 현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주민들에게 “제가 늘 지역구에서 하는 말이 ‘동작에서 태어난 충청도의 딸, 호남의 손녀’입니다. 제 할아버지 고향이 전남 영암이십니다”라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충청도에선 아버지 고향임을 강조하고 다닌 사실도 새삼 드러났다.

□ 나경원의 ‘출신 모으기’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올 2월 전당대회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제가 부산에서 둘째 아들을 낳았다”며 ‘부산의 어머니’를 자처했다. 자신의 4선 경력이 파란만장한 것처럼 지역 정체성은 서울 충청 호남 부산을 넘나든다. 이런 식이라면 몇 다리 건너 경기와 강원, 제주에서 언니 동생 등의 연고를 찾는 것도 시간문제다.

□ 나경원의 팔색조 배경을 소환한 것은 그의 ‘광주일고 정권’ 발언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 장외집회에서 “서울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이 민주당인데 그중 20명이 광주ㆍ전남ㆍ전북이더라. 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란 말도 있다”며 ‘호남=광주일고’로 몰아붙였다. 일베식 거짓으로 지역감정을 선동한 망발이다. 호남의 손녀가 할 말은 더욱 아니다. 거명된 광주일고는 물론, 거명되지 않은 나머지 학교에도 이런 모욕이 없다. 그의 정치 입문 사다리인 비례대표는 지역구와 대비돼 전국구로 불렸다. 전국의 딸로 행세하는 나경원은 지금 그 사다리를 치우자고 주장한다. 조국의 ‘말빚’을 성토하는 그의 정신시계는 몇 시인지 궁금하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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