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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지레 지고 들어가지 말자!

입력
2019.09.0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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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더 큰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큰 나라들이 아니라 그들과 싸움을 두려워하며 지레 지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우리에게 더 큰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큰 나라들이 아니라 그들과 싸움을 두려워하며 지레 지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워낙 위태롭고 엄중하다보니 다른 주제로 얘기하는 것은 너무 한가하고 심지어 부당한 것 같아 저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주제로 얘기합니다. 얘기들 중에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망망대해 거친 파도 가운데 돛단배’ 같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은 다 큰 나라들이고 그에 비해 우리는 작은 나라이고, 큰 파도가 돛단배를 집어삼키듯 그 큰 나라들이 우리를 집어삼킬 것 같다는 거지요.

정말 그럴까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 큰 나라들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망망대해 거친 파도 가운데 있는 돛단배같이 그렇게 작은 나라인가요? 그리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격랑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가 그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약한가요?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그들이 복지, 곧 행복의 땅으로 여겨온 가나안에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모세는 이스라엘 각 지파 대표들로 이뤄진 정찰대를 가나안을 정찰하고 오게 하고, 정찰대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들어갈 곳 가나안이 행복의 땅인 것만은 분명한데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비관론이 일어나고, 그 이유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비관론자들이 하느님의 벌을 받아 죽게 되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하느님이 벌을 내리지 않아도 이런 비관론자들은 지레 죽은 것입니다. 사실 지레 죽는 것이 제일 불쌍하고 한심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칼을 들고 찌르는 척만 했는데도 놀라 지레 죽는 것과 같은 거지요. 무엇보다도 자신을 메뚜기 같다고 여기는 것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느님도 사랑으로 만드신 당신의 작품이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하면 분노하실 겁니다. 당신의 걸작을 메뚜기 같다고 폄하하고 폄훼했으니 말입니다.

제가 자주 주장하고 제 인생 지표로 삼는 것이 ‘작은 것을 큰 문제로 만들지 말고, 큰 문제도 작은 문제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큰 문제도 작은 문제로 만들어 해결합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고는 끙끙대다 해결 못 하고 맙니다. 이미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공동체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주 망하려고 작정한 공동체는 공동체가 직면한 작은 문제를 이 사람이 큰 문제로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더 큰 문제로 만들어 점점 큰 문제, 이제 모두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여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골리앗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면 좋을 것입니다. 골리앗이 등장하자 이스라엘의 왕에서부터 장수까지 이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큰 골리앗과 그의 군대를 당해낼 수 없다고 지레 지고 들어가 싸우니 싸울 때마다 집니다. 그러나 어린 다윗은 달랐습니다. 비록 어리고 작았으며 싸움의 경험도 없고, 그도 골리앗이 크다고도 생각했지만 하느님보다는 작고 하느님을 힘입은 그는 자신이 골리앗보다 결코 작고 약하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앞둔 이스라엘은 자중지란으로 싸우기도 전에 망했습니다. 들어가서는 안 된다, 죽는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큰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큰 나라들이 아니라 그들과 싸움을 두려워하며 지레 지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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