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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체르노빌’

입력
2019.09.03 18:00
수정
2019.09.03 19:5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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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

‘차이나 신드롬’은 원전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는 말이다. 원자로가 냉각장치 고장으로 녹아 땅을 뚫고 지구 반대편 중국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서구인들이 중국을 정반대 쪽에 있다고 생각해 만든 표현이다. 전혀 무관한 지역까지 재앙에 휘말릴 수 있다는 가정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줄 만하다. 1979년 동명 영화가 개봉된 뒤 몇 주 만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섬 원전에서 영화 내용과 엇비슷한 사고가 발생해 ‘차이나 신드롬’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체르노빌’이 지난달 한국에서도 공개됐다. 드라마는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를 그린다. 실수로 시작된 사고가 어이없는 초기 대응으로 피해가 커지는 과정을 묘사한 후 대재앙을 극복하려는 이들의 악전고투를 담는다. 드라마는 정교한 화법으로 방사능의 무서움을 전달한다. 시청자는 멱살을 잡혀 사고 현장에 끌려 간 듯한 공포 체험을 하게 된다. 원전의 편리함 속에 배인 공포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 그렇다고 ‘체르노빌’이 과격한 반원전 드라마는 아니다. 원전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인재(人災)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치열한 냉전을 치르던 구소련 지도부는 서방에 알려질까 봐 비밀리에 사고 처리를 하려 한다.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는 완고한 사고방식이 적극 대응을 방해한다.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됐다고 하나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경직된 관료주의와 권위적 정치체제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목숨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방사능과 매한가지다.

□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 해역에서 잡힌 수산물을 시식하는 모습도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내년 도쿄올림픽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 경기가 후쿠시마 아즈마 야구장에서 열린다. 원전 사고 발생지에서 67㎞ 떨어진 곳이다. 사고 이후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 이내는 거주 불능 지역으로 선포됐다. 내년 올림픽이 기대감보다는 공포감이 큰 건 당연하다. ‘체르노빌’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거짓이 표준이 되고, 권위가 남용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제대로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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