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K팝의 계절’이었다. 7~8월 아이돌그룹의 흥겨운 댄스곡이 쏟아졌고, 그 노래들은 계절적 특수를 누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 그 맛”이라 노래하며 경쾌한 비트로 여름의 흥을 더해 사랑받은, 레드벨벳의 ‘빨간맛’(2017년 7월 발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멜론, 지니 등 6개 음원 사이트의 음원 소비량을 집계하는 가온차트 7월 음원 차트 톱10에는 K팝 아이돌그룹 노래가 한 곡도 없었다.
예년의 같은 시기를 살펴보면 부진은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7월 같은 차트엔 톱10 중 6곡이 아이돌그룹의 노래였다. 2015년부터 매해 7월 차트에 아이돌그룹 노래는 톱10에 5곡 이상이 매번 포함됐다. 7월 차트 톱10에 아이돌그룹 노래가 한 곡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기는 2010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8월도 7월과 비슷한 상황이라 아이돌그룹의 올 여름 음원 시장 수확은 2010년대 들어 가장 흉작이 될 처지다.
K팝이 올 여름 음원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데는 여러 변수가 있었다. ‘YG엔터테인먼트 리스크’와 K팝 기획사의 전략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버닝썬 사태’와 원정도박ㆍ성매매 알선 의혹 관련 수사로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가 회사를 떠나면서 YG는 올 여름 콘텐츠 제작에 차질을 빚었다. 마약 브로커와 접촉한 비아이가 지난 6월 그룹 아이콘을 탈퇴하면서 아이콘은 올 여름 신곡을 내놓지 못했고, YG가 이번 여름 첫 선을 보이기 위해 준비했던 신인 그룹 트레저13의 데뷔는 연기됐다. 3대 K팝 기획사(SMㆍYGㆍJYP엔터테인먼트) 중 한 곳인 YG에서 올 여름 이렇다 할 콘텐츠를 내놓지 못해 K팝의 음원 시장 점유율 약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YG는 음반보다 음원 성적에 유독 강세를 보인 기획사로 유명했다.
음원 성적이 좋은 일부 여성 아이돌그룹이 올 여름 신곡을 내는 대신 해외 공연에 치중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트와이스는 7~8월 미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블랙핑크는 7월 태국 등에서 공연에 집중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K팝 해외 시장이 커지면서 봄에 앨범을 내고 공연 성수기인 여름에 해외 공연에 올인하는 아이돌그룹이 늘고 있다”며 “K팝의 전략 변화로 여름 음원 시장도 과도기를 맞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5~7월 발표된 댄스곡 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42%가 줄었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요즘 음악 시장에서 댄스곡은 주로 아이돌그룹이 내기 때문에 아이돌그룹의 이번 여름 신곡 발표가 예년 보다 부쩍 줄었다고 볼 수 있다”며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화제로 발라드 OST곡들이 인기를 얻으며 K팝이 차트에서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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