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개 중고교 학생 1만여명 집회… 10개 대학 동맹휴학, 21개 업종 총파업
2일 홍콩 중문대학에서 열린 집회에서 무대에 오른 한 여학생이 울먹이며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뒤편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동맹휴학으로 들판에 불을 붙여 홍콩을 구하자'라는 구호가 선명하다. 김광수 특파원

“동맹휴학으로 불을 붙이자, 들판을 태워 홍콩을 구하자.”

2일 정오 홍콩 주룽(九龍)반도 사틴에 위치한 중문대학. 도서관 앞 간이무대 뒤편에 큼지막한 글씨로 이 같은 구호가 적혀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여학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양심과 자유, 밥그릇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물으며 “자라나는 새싹들을 잘 가르치려고 교육을 전공했는데 요즘 여러 교수와 교사들은 학생들의 미래를 죽이고 있어 참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경찰ㆍ정부와 시위대 가운데 중립은 없다”면서 “세상의 진실을 바라보며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정의”라고 강조했다.

무대부터 학생식당에 이르는 100여m 거리의 공간에 집결한 족히 1,000여명의 학생들은 또래 친구들이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을 때마다 “홍콩인, 힘내라”는 구호를 외치며 용기를 북돋웠다. 범죄인 인도법 완전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 반정부 시위대의 저돌성을 상징하는 방독면을 쓰고 연단에 오른 한 청년은 “사회와 거리 곳곳에서 불이 나고 지독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어떻게 우리들이 학교에서 아무 일 없는 듯 한가롭게 앉아있을 수 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2일 홍콩 중문대학에서 열린 동맹휴학 집회에 학생들이 몰려 캠퍼스를 가득 메웠다. 김광수 특파원

당초 기자는 홍콩섬 센트럴역 에든버러광장에서 오전 10시 예고된 중ㆍ고등학생 집회현장을 먼저 찾았다. 하지만 주최 측은 시간을 10시 30분으로 미루더니 다시 낮 12시 30분으로 늦췄다. 오전 10시에 맞춰 삼삼오오 광장을 서성이던 교복차림의 학생들은 멋쩍은 듯 주위를 맴돌다 흩어졌다. 집회 준비과정에서 만난 아이작 청 데모시스토당 부의장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집회를 몇 시간 미룬 것”이라며 “사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오전 7시부터 홍콩섬 차이완의 사이케이완 공립학교 등 3개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500여명은 손에 손을 잡고 수백m 길이의 인간 띠를 잇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때 중문대에서 집회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래 오후 3시 30분부터 열려던 집회다. 대학이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산기슭에 위치해 외진 곳이었지만 학생들이 일찌감치 모이면서 시간을 앞당겼다.

아이작 청 데모시스토당 부의장이 2일 홍콩섬 센트럴역 에든버러광장에서 열린 중고생 수업 거부 집회에 앞서 기자들에게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광수 특파원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30분 거리의 중문대로 이동했다가 다시 에든버러광장으로 돌아왔다. 오후 1시쯤, 집회 인원은 2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대부분 하얗거나 하늘색의 교복차림이었다. 이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참가했다는 렁(16)군은 “캐리 람(林鄭月娥) 정부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며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는 건 홍콩 시민으로서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무대와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던 구오(14)양은 “우리 중학생도 학교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이건 바로 내 미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는 한 변호사가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16세 미만은 후견인이 있어야 심문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면서 “만약 시위 중 경찰에 체포된다면 반드시 이 같은 점을 먼저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집회 참가자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로 확산되면서 13주째로 접어든 홍콩 민주화 시위는 들불처럼 세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31일 홍콩 경찰의 도심 집회 금지방침에 맞서 50~60대가 종교집회로 물꼬를 트면서 다시 시동을 걸자, 다음날인 1일에는 20대가 앞장서 공항길을 차단하며 홍콩 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급기야 2일에는 10대 학생들과 30~40대 직장인이 각각 동맹휴학(罷課)과 총파업(罷工)에 동참하며 민주화 열기에 불을 지폈다.

교복을 입은 10대 청소년들이 2일 홍콩섬 센트럴역 에든버러광장에서 열린 수업 거부 집회에 참석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무대 위에는 ‘미래가 없는데 수업을 받을 필요가 있나’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김광수 특파원

개학일인 2일 홍콩의 400여개 중ㆍ고등학교 가운데 절반인 200개 학교에서 1만여명이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특히 지난달 25일 12세 소년이 체포된 데 이어 31일 집회 당시 경찰이 지하철 객차 안까지 들어가 63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13세 소년도 붙잡혀 10대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다. 홍콩 경찰은 이 소년이 화염병과 라이터를 각각 2개씩 갖고 있었다고 밝혔지만, 온라인에서는 ‘경찰 가족’으로 딱지가 붙은 청소년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학교 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청 부의장은 이날 “경찰 자녀들을 따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개강을 맞아 홍콩 내 10개 대학 학생회도 중문대 집회를 기폭제로 2주간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이들은 정부가 13일까지 △송환법 철폐 △체포자 석방 △폭도 명칭 철회 △독립조사기구 설립 △보통선거 실시 이렇게 5가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무기한 동맹휴학으로 투쟁 강도를 높일 방침이다.

아울러 13개 국립병원을 포함해 의료, 항공, 건축, 금융, 사회복지 등 21개 업종 종사자들도 오후 2시 30분부터 입법회(우리의 국회) 뒤편 타마르 공원에 모여 반정부 집회를 열고 3일까지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일부 시위대가 몽콕 경찰서 앞에 집결해 강경 진압에 항의하며 도로를 막아서면서 “경찰이 출몰하면 우리는 지하철역을 때려 부술 것”이라며 “우리가 불사르면 너희도 우리와 함께 타 죽을 것”이라고 외쳤다. 1일 공항을 타깃으로 한 시위로 인해 중단됐던 공항철도와 지하철은 2일 아침부터 모두 정상 운행됐다.

홍콩=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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