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KFC 창업주 할런드 샌더스. 그는 KFC 지분을 판 뒤로도 KFC의 '얼굴'로 활동했다.

전 세계에 매장 2만여 개를 보유한 닭고기 패스트푸드 체인 KFC(Kentucky Fried Chicken)는 근년 들어 여러 건강이슈 외에도 환경 및 동물권 운동 진영의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지만, 창업자 할런드 데이비드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1890.9.9~1980.12.16)의 이미지는 썩 좋은 편이다. 대공황시대 떠돌이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시작된 KFC의 역사, 고초 끝에 이룬 성공 신화, 만년의 자선과 장학사업 덕이었다. 물론 매장마다 서 있는, 하얀 턱시도 차림의 후덕한 인상도 여느 자본가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인디애나 주 헨리빌에서 도축업자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숨지고 어머니가 대신 공장을 다니게 되면서 어린 그가 더 어린 동생들을 해 먹이고 보살펴야 했다고 한다. 어머니 재혼 이후 의붓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13세 무렵 가출했다. 그 뒤로 40세에 캔터키주 코빈시의 변두리 셸 주유소 한 편에서 치킨과 음식을 파는 식당을 열기까지 만 27년간, 그는 미국 남부 거의 전 지역을 떠돌며 증기선 선원과 보험 외판원, 철도노동자 등 수십 가지 일을 전전했다.

39년 한 음식비평가가 일삼아 찾아와 그의 식당을 소개하는 글을 외식 매체에 쓸 만큼 그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1940년 그는 KFC 특유의 튀김법과 양념 레시피를 완성했다. 작은 모텔까지 사들여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55년 시련이 시작됐다. 주와 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면서 그의 식당은 문을 닫게 됐고, 모텔을 사면서 진 빚도 감당해야 했다. 얼마간의 저축 외에 사회보장기금에서 주는 월 105달러가 수입의 전부였다.

KFC의 첫 프랜차이즈 지점은 1952년 문을 연 유타주 솔트레이크 지점이다. 사실 문을 연 게 아니라 기존 식당에 닭 한 마리당 4센트의 로열티를 받고 KFC 레시피를 제공한 거였다. 식당 문을 닫은 뒤 샌더스는 프랜차이즈 영업을 본격화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자신의 레시피와 KFC 브랜드를 판매한 거였다. 그렇게 KFC 신화가 구축됐다.

그는 1964년 캐나다 지점을 제외한 KFC 지점 600여 곳의 지분 일체를 200만달러에 매각했고, 재산의 대부분을 의료ㆍ장학사업에 썼다. 최윤필 선임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