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코 아버클(Roscoe Arbuckle, 1887~1933)은 미국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적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이고 극작가다. 찰리 채플린(1889~1977)이 자신의 코미디 소품인 중절모를 그에게서 가져다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채플린이 그의 출세작이라 할 ‘키드’를 제작ㆍ발표한 1921년, 아버클은 파라마운트사와 100만달러(2018년 기준 약 1,300만달러) 로열티 계약을 체결한 인기 절정의 배우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몰락이 시작됐다.
그는 향락을 즐겼고 방탕했다. 금주법 시대였지만 그의 곁에는 술이 넘쳐났다. 160kg에 육박한 몸무게 때문에 얻은 “패티(Fatty) 아버클”이란 애칭처럼, 그에겐 부족한 게 없었다. 두려울 것도 없었다.
1921년 9월 첫 주 노동절 연휴를 맞아 영화사는 LA지역 극장주를 위한 파티를 열면서 간판 스타인 그에게 참석을 청했다. 33세의 콧대 높은 아버클은 그걸 거절했고, 대신 친구들과 태평양 연안 요트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9월 5일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프랜시스 호텔에 방을 잡고 자신들만의 파티를 벌였다. 거기 초대된 이들 중 한 명이 26세의 모델 겸 신인 배우 버지니아 래피(Virginia Rappe)였다. 그날 만취한 르페이는 아버클의 방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 발견됐고, 병원에 옮겨진 뒤 나흘 뒤 숨졌다. 사인은 방광 파열과 그로 인한 복막염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한 여성이 “아버클의 강간이 르페이를 죽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인사불성인 르페이를 강제적으로 제 방으로 끌고 갔고, 얼마 뒤 비명 소리를 듣고 가보니 르페이가 발가벗겨진 채 “아버클이 그랬다(Did it)”고 말하더라는 거였다. 언론은 그 진술에 살을 붙이느라 바빴다. 윌리엄 허스트는 “루시타니아호 침몰보다 아버클의 침몰이 더 수지 맞는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주법 시대 도덕의 십자군들에게도 아버클은 여러모로 좋은 먹잇감이었다.
고살(비고의성 살인) 혐의로 기소된 아버클은 3차례 재판 끝에 2차례는 배심원 의견 불일치로 풀려났고, 마지막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결백하다고 믿는 이들은 드물었다. 증언자가 아버클에게서 돈을 갈취하기 위해 정황과 진술 일부를 지어냈다는 건 훗날 드러난 사실이었다. 아버클은 여러 차례 재기 끝에 만 46년을 살고 숨졌다. 그리고, 아버클과 함께, 성폭력 피해자들의 수많은 진실도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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