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농구가 월드컵에서 특유의 색깔을 잃었다. 외곽슛을 펑펑 터뜨리는 ‘양궁 농구’가 아닌 귀화 선수 라건아(현대모비스)에게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패턴으로만 나서다 세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8월 31일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69-95로 완패했다. FIBA 랭킹 5위 아르헨티나는 32위 한국에 버거운 상대가 분명했지만 경기 내내 끌려 다니며 힘 한번 못 쓰고 무기력하게 졌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전력 차 탓에 준비했던 농구를 펼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통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한국 농구는 높이의 열세를 보이기 때문에 골 밑이 아닌 외곽에서 3점포로 승부를 걸고, 빠른 공수 전환으로 상대 수비가 정돈되기 전에 공격을 마무리 짓는 방법을 택했다.
김상식 감독 역시 월드컵 전 4개국 초청 국제대회에서 과감한 3점슛과 속공을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실제 초청 대회 1차전에서 유럽의 강호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1개의 3점슛을 넣는 데 그쳤던 대표팀은 체코와 앙골라전에서는 각각 10개의 외곽포를 터뜨렸다. 그 결과, 체코와 대등하게 싸우다가 졌고, 앙골라는 제압했다.
하지만 월드컵 첫판에서 아르헨티나를 맞아 다시 소극적으로 변했다. 상대 높이를 의식한 나머지 외곽슛 적중률은 떨어졌다. 오히려 아르헨티나의 3점슛이 불을 뿜었다. 대표팀은 23개를 던져 8개를 적중시킨 반면 아르헨티나는 31개를 시도해 17개를 꽂았다. 속공 득점 역시 한국(4점)보다 아르헨티나(8점)가 많았다.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면서 라건아에 대한 의존도만 커졌다. 라건아는 혼자 31점을 퍼부었고, 평소 시도하지 않던 3점슛도 2개를 던져 모두 성공시켰다. 주포 이정현(KCC)이 3점슛 3개 포함 15점으로 힘을 보탰을 뿐, 다른 선수들의 지원 사격은 현저히 부족했다.
이정현은 “세계적인 팀과 실력 차를 절감했다”며 “모든 면에서 완패했다”고 밝혔다. 5점에 그친 김선형(SK)도 “리투아니아전 대패의 기억이 떠오르는 경기였다”면서 “준비했던 속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패인을 짚었다.
2일 2차전 상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미국프로농구(NBA) 선수가 포진한 나이지리아를 1차전에서 꺾은 강 팀이다. 25년 만의 월드컵 1승을 위해서는 ‘양궁 농구’ 부활이 절실하다. 이정현은 “나 말고도 득점할 선수는 많다”며 “김선형, 이대성(현대모비스) 등 동료들이 언제든 폭발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김상식 감독 역시 “다음 경기에서는 단점을 보완해 보다 나은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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