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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라 vs 못낸다…골 깊어지는 망사용료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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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라 vs 못낸다…골 깊어지는 망사용료 갈등

입력
2019.08.3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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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이 과징금 정당성을 두고 벌인 행정소송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다. 방통위는 이용자 불편이 예상되는데도 접속경로를 변경한 페이스북에 과징금은 마땅하다고, 페이스북은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통신사(ISP)가 책임져야 할 망 품질 관리까지 떠넘기지 말라며 맞섰다. CP사에도 망 품질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를 두고 벌어진 1심 결과는 페이스북의 승리로 돌아갔다.

사실 이번 재판은 페이스북을 비롯한 구글 등 외국계 기업이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과 달리 제대로 된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고, 재판부가 방통위의 손을 들어 준다면 망 품질 책임감과 함께 망 사용료를 받아낼 명분이 생길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1심 이후 통신업계에서 반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등 이미 연간 수백억원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이 1심 후 페이스북, 구글 등과 손을 맞잡고 망 사용료가 과도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망 사용료 문제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으나 CP 업체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연합군을 형성하면서 4차 산업혁명 생태계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G(LTE) 시대에는 통신사가 망을 깔고 유지보수를 위해 매년 투자를 해야 하는 사이 망 위에 얹은 서비스로 CP 업체들이 수익을 벌어가는 구조였다.

이 보다 훨씬 양질의 고품질 서비스를 망 위에서 돌릴 수 있는 5G 시대에선 통신사들이 패권을 다시 가져오려 하고 있다. 망 사용료 역시 망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려는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CP사들은 그 권력이 지금보다 더 커지지 않기 위해 견제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국내에서 벌어지는 양 진영의 싸움은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의 ‘전초전’으로 이목이 쏠리고 있기도 하다.

구글과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CP들은 행정소송을 계기로 망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대변하는 인터넷기업협회는 “망 비용 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망 비용의 지속적 증가와 이를 부추기는 ‘상호접속고시’”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과거 ISP들끼리의 접속에 대해선 무정산이 원칙이었지만 지난 2016년 고시 개정으로 데이터를 주는 쪽이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페이스북의 경우 국내에 KT만 캐시서버(이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를 가까운 위치에 저장해 두기 위해 설치하는 보조 서버)를 설치해 두고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 가입자들도 이 KT 캐시서버를 통해 접속해 빠른 속도로 서비스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고시 개정으로 페이스북 트래픽을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 제공하는 쪽이 비용을 부담하게 됐고 KT는 돈을 주면서까지 타사 가입자들을 위한 캐시서버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에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도 캐시서버 설치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도 일정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다 지금의 갈등을 맞게 된 것이다.

인터넷기업협회는 “상호접속고시 개정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망 비용이 증가하는 나라가 됐고 국내 CP의 망 비용 부담 문제가 불거지게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망 비용 증가에 대한 증거가 없을뿐더러, 이번 논란의 핵심은 망 비용 증가가 아니라 외국 기업의 망 비용 지불 회피라고 주장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연간 700억원, 300억원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거의 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망 비용 부담 요구는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KTOA는 “CP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과거 텍스트 위주에서 고화질 동영상으로 변경되면서 트래픽이 증가해 CP는 매출이 늘고 콘텐츠 수급비용도 늘고 망 이용 비용도 늘어나는 건 정상적 구조”라며 “하지만 CP가 부담하는 망 이용비용의 회선당 단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져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극소수 대형 글로벌 CP가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망 비용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외국 기업의 경우 전체 트래픽의 30~40%를 점유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반면 망 비용은 부담하지 않아 결국 비용이 이용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과 방통위 소송은 1심이 뒤집어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CP사들의 주장은 향후 불리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5G 상용화를 계기로 ‘망 중립성’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망 중립성은 ISP가 자사 망을 이용하는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느리게 만드는 등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개념인데 2017년 12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이를 폐기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힘의 균형이 5G를 계기로 망 제공자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고, 각 국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ISP 망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글로벌 CP면 몰라도 국내 CP들이 ISP와 경쟁 관계에 놓인다면 5G 생태계 등에서 더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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