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우려되던 시기에 강경화 장관 아프리카 출장 가
김현종이 ‘지소미아 종료’ 주도… 정보ㆍ소통 부족했을 가능성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 뒤 한미 갈등이 노출되면서 외교부가 배제되고 청와대가 주도하는 ‘외교부 패싱’이 대미 외교 난맥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제정치 문맥은 외면한 채 국내 여론을 의식하고 국익을 강조하다 보니 외교의 본령인 소통과 상황 관리에 공백이 생기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29일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22일) 뒤 1주일이 지났지만 미측의 비판적 목소리는 잦아들 줄 모른다. 28일(현지시간)에도 마크 에스퍼 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랜들 슈라이버 인도ㆍ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 등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이 일제히 “실망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청와대 해명과 달리 미국의 불만을 무마할 사전 정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미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가 진행됐다는 청와대 설명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분명한 건 교감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명확하게 표명된 동맹의 입장을 한국이 무시했다는 점에서 미국은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내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결정이라는 게 미국을 더 불쾌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외교부 패싱 현상이 한미 간 소통 부족의 배경으로 꼽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일본 경제 보복이 날로 고조되던 와중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3개국 출장에 나섰다. 이 무렵 미국의 중재 의사를 타진하러 미국으로 출장 간 인물은 외교부 고위직이 아니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었다.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는 강 장관이 베이징(北京)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시각에 열렸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시한이 24일이었던 만큼 외교장관 없이 결론을 내릴 정도로 시급한 상황이었냐는 의문이 남는다.
외교가에서는 전날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이례적으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사실상 초치한 것도 청와대의 적극 대응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외교부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적극 제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외교부가 청와대와 긴밀히 소통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주한 미국대사는 외교부 1차관의 주요 외교 업무 상대여서 정기 및 수시로 만난다”며 “28일 면담 역시 이런 정기 만남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친미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래도 관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외교부보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청와대가 나서는 게 자연스럽다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 실제 지난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 가동되면서부터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되고 외교ㆍ통일ㆍ국방부가 협업하는 구도가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한일 갈등 국면에서는 역기능이 노출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당장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청와대와 백악관의 NSC 차원에서는 충분한 소통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미 국무부와 국방부 관리들은 “지소미아 종료를 사전에 통보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양국 외교부와 국방부 채널에서는 정보 교류나 소통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소미아 연장보다 종료 결정이 미국의 중재 개입을 이끌어내는 지렛대가 될 거라는 발상을 하고 밀어붙인 인물은 김 차장이다. 통상 전문가인 김 차장은 동맹 관리보다 리스크가 따르는 담판이나 협상에 더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외교 소식통은 “지소미아는 체결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게 애초 문 대통령의 인식이었는데 국내에 반일 정서가 강해지면서 여건이 조성된 셈이고, 추진력 강한 김 차장이 현실화한 듯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이날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인한 한미동맹 균열 보도 관련 해명자료를 내고 “그간 한미 간에는 여러 채널을 통해 각급에서 한일 간 갈등 상황과 일본의 부당한 조치가 계속될 경우, 지소미아 종료를 포함, 우리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하는 등 긴밀한 소통이 있었다”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에도 미측에 동 결정의 불가피성을 재차 설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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