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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기울어진 오디션 운동장

입력
2019.08.29 18:06
수정
2019.08.29 18: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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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투표 제작 논란에 휩싸인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 포스터. CJ ENM 제공
투표 제작 논란에 휩싸인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 포스터. CJ ENM 제공

풍요로워 보이는 K팝 시장에서 가뭄에 허덕이는 곳이 있다. 남성 솔로 댄스 가수 분야다. 꽉 찬 군무가 K팝의 필승 전략처럼 여겨지다 보니 K팝 기획사들은 너도나도 그룹 기획에 전념했다. 2010년 이후 SMㆍYGㆍJYP엔터테인먼트 등 K팝 3대 기획사에서 내놓은 신인 남성 솔로 댄스 가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비, 세븐의 뒤를 이을 걸출한 남성 솔로 댄스 가수를 요즘 가요계에서 찾기 어려운 이유다.

이 K팝 시장의 갈증을 해결해 줄 가수로 올해 가장 기대를 산 이는 강다니엘이었다. 2017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에서 1위를 차지한 뒤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을 마치고 정식 솔로 데뷔를 앞둔 터라 K팝 시장의 관심은 그에게 쏠렸다.

예상은 빗나갔다. 강다니엘은 지난달 첫 솔로 앨범 ‘컬러 온 미’를 내놓았지만 혹평을 받았다. 그의 랩은 경직됐고, 노래는 서툴렀다. 홀로 음반을 내고 무대를 이끌기엔 준비가 덜 된 듯 보인다는 평이 잇따랐다.

강다니엘이 빛을 본 TV 오디션(Audition)은 ‘듣는다’란 뜻을 지닌 라틴어(auditio)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경청하는 오디션에서 뽑힌 어떤 아이돌은 보기엔 좋은데, 정작 음악을 듣고 나면 머쓱해진다. 아이러니다. 아이돌 지망생 100만 명 시대. 기획사 없이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수많은 연습생들에겐 쉬 잡을 수 없는 데뷔 기회를 ‘특별히’ 잡을 수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부실한’ 오디션 아이돌의 탄생은 K팝 시장의 기이한 요람에서 비롯됐다. 방송사가 기획사와 손잡고 K팝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는, 특이한 오디션 시스템 얘기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K팝 가수 데뷔 특별전형’이다. 지난달 종방한 ‘프로듀스X101’에 합류한 101명 중 92명이 기획사가 있는 연습생이었다. 무소속 연습생은 9명에 불과했다. 전체 인원에서 10분의 1도 안 되는 인원이다. 가요관계자들에 따르면 제작진은 여러 기획사에 직접 연락해 연습생을 섭외했다. 그렇게 제작진이 알음알음 알게 된 기획사 연습생 위주로 출연자를 채워진 데 따른 불균형이었다.

공평하게 듣는 자리여야 할 오디션은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프로듀스’ 시리즈에선 유명 기획사의 로고를 무대 스크린에 크게 띄운 뒤 그 회사 소속 연습생들이 등장하면 곳곳에서 탄성이 터지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노골적으로 연습생의 ‘출신’을 강조한 연출이었다.

기획사의 후광을 받은 연습생은 오디션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시청자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오디션에서 유명 기획사 연습생은 K팝의 ‘특목고’ 출신이나 다름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 때 ‘외고 학부모 인턴십’ 때 썼다는 논문으로 준엄한 학계에 발을 디뎠다면, K팝 기획사의 준비가 덜 된 일부 연습생들은 기획사에 친화적인 ‘프로듀스’ 시리즈로 프로 무대를 누빌 수 있었다. 방송사와 기획사, 그들만이 짠 ‘판’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고름은 터졌다. 시청자들은 최근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프로듀스X101’ 제작진과 일부 기획사를 사기ㆍ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작진이 일부 기획사와 공모해 투표를 조작했다는 주장이었다. 경찰은 ‘프로듀스X101’ 제작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제작진을 비롯해 일부 기획사 관계자를 불러 수사에 나섰다.

그들만의 리그엔 잡음이 일 수밖에 없다. 지겹긴 했지만 국민을 상대로 공개 오디션을 치렀던 ‘슈퍼스타K’가 문득 그리워졌다. 공정성을 위협하는 ‘닫힌 오디션’에 K팝의 미래는 없다.

양승준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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