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심 파기환송…“박근혜 뇌물죄는 분리 선고해야”
이재용 말ㆍ영재센터 지원 뇌물 인정… 묵시적 청탁도 유죄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씨, 그 어느 누구도 웃지 못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국정농단’ 사건 핵심 피고인인 박 전 대통령, 이 부회장, 최씨의 원심 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모두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2016년 12월 21일 박영수 특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2년8개월만에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것이다.
모두 파기환송됐지만, 이유는 다 달랐다.
1심에서 징역 24년, 2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절차 규정 위반이 이유가 됐다. 공직선거법은 공직자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의 경우, 다른 혐의와 분리해서 선고토록 하고 있지만, 앞선 1ㆍ2심이 뇌물죄를 다른 죄와 합해서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검사의 상고이유에 없지만 대법원 직권으로 판단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포함된 사유에 관해 심판하지만,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률 위반 등이 있는 경우에는 상고이유서에 포함되지 않은 때에도 직권으로 심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절차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혐의를 다 한데 섞어 한가지 형으로 통합해 선고할 경우 형이 다소 깎이는 부분들이 생긴다. 그런데 대법원은 혐의를 섞어서 한데 선고하지 말고 혐의 별로 선고한 뒤에 산술적으로 합치라 했다. 그럴 경우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2심 징역 25년형보다 다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도 더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과 달리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말 세 마리는 뇌물이었고 △삼성그룹의 승계작업이 존재했으며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점 등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이 부회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다시 실형을 선고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법원은 지속적으로 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던 삼성 측이 최씨의 항의 이후 그런 행동을 그만 뒀다는 점을 들어 “삼성이 최씨 측에 지원한 말들의 소유권은 실질적으로 최씨에게 넘어갔고 그렇다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또 삼성 측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했던 16억원에 대해서도 “삼성이 지원금을 제공할 당시 (이 부회장을 그룹 후계자로 세우려는) 승계 작업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조희대ㆍ안철상ㆍ이동원 대법관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이 부회장 개인에겐 항소심에 비해 뇌물액수가 50억원 늘었다. 이 부회장의 실형 가능성이 높아졌다. 승계작업이 있었다는 판단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중심으로 한 검찰 수사에 힘을 더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최씨는 일부 무죄 판단 때문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최씨가 대기업들에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출연금을 요구한 것이 강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판결을 반길 수는 없다. 뇌물 등 다른 여러 주요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받은 데 비해, 이번에 무죄가 나온 강요죄 부분은 미미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날 판결은 국민적 관심사를 고려, TV나 인터넷 채널 등을 통해 생중계로 진행됐다. 대법원 앞에서는 보수ㆍ진보 양 진영이 총출동, 시위성 집회를 열었다. 여야 등 정치권은 물론, 국정농단 수사를 맡았던 박영수특검은 물론, 윤석열 검찰총장도 성명을 별도로 내놨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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