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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민주당이 자초한 ‘빼박 조국’

입력
2019.08.2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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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역린 건드린 의혹, 가짜뉴스로 매도

청와대 끌려다니다 검찰 강제수사 직면

진보기득권 깨는 ‘계급이슈’ 공론화 필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나흘 앞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소나기가 쏟아진 이날 그는 검찰 수사에는 함구했으나 “이 비가 그치면 곧 인사청문회다.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해 정면돌파 의지를 재확인했다/ 류효진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나흘 앞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소나기가 쏟아진 이날 그는 검찰 수사에는 함구했으나 “이 비가 그치면 곧 인사청문회다.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해 정면돌파 의지를 재확인했다/ 류효진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여당 대표로서 송구하고 죄송스럽다”고 사과한 것은 8ㆍ9 개각 이후 보름 만이었다. 그 사이에 조 후보자 가족의 수상한 사모펀드 투자부터 딸 장학금ㆍ논문 특혜까지 온갖 의혹이 쏟아지고 숱한 내로남불의 ‘오럴 해저드’ 흑역사가 들춰졌지만, 민주당은 늘 하던 대로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일관했다. 이 대표 역시 불과 이틀 전 의원총회에서 “언론보도에 정권을 흔들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음모론을 견지하며 청와대의 뜻에 반하는 언행을 삼가라는 주문까지 했다.

이 대표가 돌연 자세를 낮춘 것은 가짜뉴스 전략이 여론에 먹히기는커녕 정권의 민낯을 드러내 민심의 분노를 부채질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서일 게다. 경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수저 딸’ 논란이 벌어진 직후 박용진 의원은 방송에 나와 “땀 흘리며 지역구 사람들을 두루 만나 보니 문제가 심각하다”며 “교육문제는 기회의 평등과 맞닿아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역린’이어서 해명이 잘못되면 (정권이)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는 경고와 함께 여권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송영길 금태섭 의원 등은 “국민들은 적법 여부보다 (상위 계층의 반칙과 편법에 실망한) 정서를 얘기하는데, 불법은 없다는 식으로 엇나가면 우리만 바보된다”고 했다.

이 대표의 늑장 대응에는 청와대의 심기를 먼저 챙긴 강경 초선들의 입김이 컸다. 친위그룹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의총 등에서 조 후보자 논란을 “개인이 아닌 정권의 문제”로 규정하고 “여기서 밀리면 총선은 물론 레임덕으로 연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누구나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보편적 기회일뿐 특혜가 아니다” “권력과 지위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해당 교수가 교육적 배려를 해준 것”이라는 등 궤변도 늘어놨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정치공학적 타산만 앞세운 이들 탓에 당 지도부는 촛불세대의 역린을 건드린 배신감을 읽지 못했다.

조국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당이 땅을 칠 대목은 또 있다. 민정수석 시절 주요 인사 때마다 부실 검증이 입방아에 오르고 사찰 논란처럼 명백히 책임질 일도 적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유로 견제할 엄두를 못냈으니 말이다. 결정적인 것은 민정수석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는데도 이명박 정부 시절의 ‘권재진 논란’도 모른 척하며 꽃길을 깔아준 ‘내로남불 건망증’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카드가 여야 관계를 망쳐 되레 사법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을 걱정하면서도 지금껏 ‘왜 꼭 조국이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한 번도 제대로 던지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패스트트랙에 올린 사법개혁 입법의 주체는 법무부가 아니라 국회이자 정당임을 스스로 부인한 처사다.

검찰의 기습적인 강제수사 착수로 조국 문제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여야의 청문회 합의를 기다렸다는 듯 전방위로 칼을 휘두르는 검찰의 의도가 알쏭달쏭해서다. 청와대와 민주당 모두 뒤통수를 맞은 듯 격하게 반발하며 ‘제 2의 논두렁시계 사건’을 거론하고, 특검을 주장하던 야당이 뜬금없이 청문회 보이콧을 들고나온 것을 보면 검찰이 청문회 정국의 주요 플레이어로 나선 것은 뚜렷해 보인다. 이 대표가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사전 협의 부재를 지적한 것은 당혹스럽다. 가짜뉴스로 매도해 온 ‘의혹’을 함부로 들추지 말라는 가이드라인 냄새도 난다.

민주당이 오판을 거듭하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조국 문제는 시쳇말로 ‘빼박캔트’가 됐다. 그럼 출구는 뭘까. 한 진보 과학자가 말했다. “나도 처음엔 조 후보자의 자격과 자녀 문제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중대한 목표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덮고 가면 잃을 게 더 많다. 오히려 (검찰개혁만큼 중요한) 이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한국사회가 방치해온 (계급)이슈가 공론화될 수 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청와대의 시야가 좁을수록 여당의 눈은 더 커져야 한다. 그래, 청문회까지는 가보자.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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