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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 서울이 물에 잠겼을 때 일어날 일들

입력
2019.08.30 04:40
수정
2019.08.30 19: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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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5>밸러드 ‘물에 잠긴 세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해만 뜨면 50도가 넘는 더위가 찾아온다. 그린란드, 남극 등의 얼음이 녹고 열팽창까지 더해져 해수면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다. 뉴욕, 도쿄, 부산, 상하이, 인천 같은 해안 도시뿐만 아니라 서울과 런던을 비롯한 우리가 아는 도시 대부분은 물에 잠겨서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어디를 둘러봐도 물밖에 없는 세상.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면서 생태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인간에게 익숙했던 동식물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대신 약 1억8,000만년 전에 끝장났던 중생대 초기(트라이아스기)에나 있었을 법한 파충류 도마뱀, 어룡 등이 출몰하고, 잠자리만 한 말라리아 모기가 날아다니며 전염병을 옮긴다. 기이한 식물은 물속에서 버려진 건물을 타고 뻗쳐올라 인간이 사라진 도시를 점령한다.

재앙처럼 바뀐 기후 환경에서 마지막까지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생명체는 인간이다. 악착같이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는 그나마 살만한 극지방으로 이주하고, 도시를 포기하지 못한 이들은 흥청망청했던 과거의 유산에 집착하면서 천천히 몰락한다. 이런 세상에서 인류에게 남은 기회가 있을까.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가 2145년을 상상하며 쓴 ‘물에 잠긴 세계’(1962)는 예언적이다.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 같은 표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현실이 될 재앙 같은 미래를 예고한다.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2100년이면 지구 표면 온도는 약 17도가 된다. 놀랍게도, 도마뱀과 어룡이 살았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지구 온도가 약 17도였다. 그때 지구 전체는 답답한 온실이었다.

17도 세상이 되었을 때, 인류와 오랫동안 공생했던 동식물 대부분이 자취를 감춘다는 설정도 뜬금없지 않다. 지금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식물 대부분은 기나긴 빙하기를 견디며 추위에 진화해 온 생명체다. 지난 500만년 동안 지구 온도가 약 16도를 넘어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17도처럼 더운 지구를 견딜 수 있는 동식물은 없다.

현재 지구 온도는 약 15도. 오랫동안 약 14도 정도를 유지했던 지구 온도는 (인간의 활동 때문에) 100년 만에 벌써 1도가 올랐다(+1도). 1도 더 오르면 500만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16도 이상이 되고(+2도), 2도 더 오르면 중생대의 17도로 회귀한다(+3도). 지금 전 세계 인류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지구 온난화가 아닌 ‘지구 가열(global heating)’인 것도 이 때문이다.

2009년 세상을 뜬 밸러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인간 조건을 탐구한 문제적 작가로 꼽힌다. ‘물에 잠긴 세계’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상징이었던 런던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고, 곳곳에서 태곳적 사라진 동식물이 다시 등장할 때에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밸러드가 소설에서 묘사한 인간 군상의 행태는 참으로 독특하고 기이하다. 이것이 정말로 인간인가.

밸러드는 우주로 향해 있던 SF의 시선을 사회와 인간으로 돌리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가다. 그가 반세기 전에 묘사한 현대 문명의 폭력성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마치 21세기를 관찰하며 쓴 것 같아서 섬뜩하다. 기업이 주도하는 소비 사회, 미디어 과잉으로 사생활이 사라진 일상생활,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학기술 등.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불안 강박 폭주의 모습은 또 어떤가. 오죽하면 ‘가디언’이 이렇게 평했겠나. “그는 떠났지만(2009년), 그의 이상한 세계는 남았다.”

밸러드가 20세기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에 그의 작품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여러 책이 나왔다. ‘물에 잠긴 세계’는 ‘불타버린 세계’, ‘크리스털 세계’ 같은 지구 종말 시리즈로 이어진다. 꿈의 초고층 아파트가 지옥으로 변하는 ‘하이-라이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걸작 영화 ‘크래시’(1996)의 원작 소설 등. 그의 단편 스물다섯 편을 모은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도 추천한다.

물에 잠긴 세계

J.G 밸러드 지음ㆍ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발행ㆍ1만 3,000원ㆍ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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