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쓰레기 없는 마을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의 수방 지역 탄중왕이 마을의 쓰레기은행 직원들이 가게에서 모은 종이박스의 무게를 재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이래도 되나’ 죄의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쓰레기를 버릴 때다.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애써 분리해 놓아도 한데 묶어 수거해 간다. 용도가 분리된 쓰레기통이 차츰 도심에 설치되고 있지만 일상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는 아직 구호나 이상에 가깝다. 해 뜰 무렵, 해질녘 동네마다 이뤄지는 쓰레기 소각이 차라리 일상에 가깝다. 머리에 박힌 의식, 손에 익은 습관이 그렇게 무섭다.

일삼아 말린 건 그리하여 당연지사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몇 차례의 실패 사례도 있었다. “마을 발전을 위해 다른 걸 하라”, “해 봐서 아는데 안 될 것”이라고 어르고 달래도 요지부동이었다. 지원단체 활동가들은 “기어코 하겠다”는 시골 주민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의 수방 지역 탄중왕이 마을 주민들이 한 집에서 모은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다.

주민들이 옳았다. 2년여 뒤 촌사람들은 ‘쓰레기 없는 마을’을 일궈냈다. 풍광은 평범할지라도 쓰레기 처리만큼은 인도네시아 1등이라는 자부심은 덤이다.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의 ‘밀당’이 어우러진 서부자바주(州) 수방의 탄중왕이 지역을 최근 이틀간 둘러봤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30㎞가량 떨어져 있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의 수방 지역 탄중왕이 마을의 쓰레기은행 직원이 한 가게 주인이 모은 재활용 쓰레기의 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장부에 적은 뒤 가게 주인의 쓰레기은행 통장에도 같은 금액을 쓰고 있다.

정오쯤, 탄중왕이에 속한 동네 팔라사리의 해리(34)씨 구멍가게에 소형 트럭이 멈췄다. 해리씨가 종이박스 뭉치, 플라스틱 병들을 주섬주섬 내왔다. 쓰레기은행(Bank Sampah) 직원인 시티마시토(50)씨가 전자저울로 무게를 잰 뒤 트럭에 실었다. 종이박스(㎏당 1,000루피아) 20㎏, 플라스틱 병(㎏당 1,500루피아) 0.5㎏가 저울에 찍혔다. 우리 돈으로 약 1,800원(2만750루피아)에 불과하지만 해리씨는 싱글벙글했다. 시티마시토씨가 장부를 꺼내 금액을 쓰고 해리씨 통장에도 똑같이 적어줬다. 적립된 돈은 언제든 원할 때 뺄 수 있다.

동네 청년회장이기도 한 해리씨의 통장을 살펴봤다. 2018년 3월 5일 개설됐고, 올해 6월 르바란(라마단 뒤 연휴로 우리의 설과 유사) 명절 때 60만루피아, 그 뒤 40만루피아를 인출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예전 사설 업체는 소규모라 수거하는 걸 잊기도 하고 돈도 적게 줬는데, 쓰레기은행은 알아서 관리를 해주고 돈도 더 준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의 수방 지역 탄중왕이 마을의 구멍가게 주인 해리(오른쪽)씨가 쓰레기를 분리 수거해 저축한 통장을 보여주고 있다.

100여m 떨어진 오당(60)씨 집에서도 같은 절차가 진행됐다. 재활용 쓰레기를 마당에 잔뜩 부려놓은 오당씨는 “귀찮은 일이고 적은 돈이지만 쌓이면 닭고기를 사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유치원생들도 쓰레기가 있으면 바로 주워 와 ‘선생님께 가져가면 이거 팔 수 있어’라고 말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집집이 수거된 재활용 쓰레기들은 마을 주민들이 ‘고통 로용(gotong royongㆍ인도네시아식 품앗이)’ 정신으로 대나무들을 세우고 덮어 함께 만든 창고에 모여 다시 품목별로 분류된다. 마을 곳곳엔 분리수거용 쓰레기통도 설치돼 있다.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2년 이상 쉬지 않고 이뤄진 ‘쓰레기 수거 동네 한 바퀴’는 촌로들을, 아이들을, 동네를, 행정을 변화시켰다. 탄중왕이 지역 5개 동네 주민 7,000명이 쓰레기통 194벌(한 벌당 2개)로 시작한 ‘쓰레기 없는 마을’ 사업은 수방 내 탄중왕이와 비슷한 행정구역 70개로 확대될 참이다. 아구스 마쉬쿠르(46) 수방 부군수는 “탄중왕이 덕분에 군 전체 쓰레기 매립 비율이 18%(매일 125톤) 줄었다”라며 “다른 지역에도 도입해 쓰레기 매립 처리량을 30%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의 수방 지역 탄중왕이 마을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쓰레기 분리 수거 창고에서 집집마다 방문해 가져 온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하며 웃고 있다.

2017년만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시 한국의 지원단체가 탄중왕이에 손을 내밀자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를 고심하며 여러 차례 회의를 열었다. “아이들이 멱감던 냇물에 쓰레기가 떠다니고 악취가 난다” “쓰레기를 방치하면 20년, 30년 뒤엔 재앙이 올 것이다” 등 마을이 직면한 문제에 공감한 주민들은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홍승훈(35) 새마을세계화재단 인도네시아사무소장은 “다른 수익 사업도 많은데 주민들이 하필 타지에서 좌절을 맛본 쓰레기 분리 사업을 원해서 얼마 안 드는 쓰레기통(한 벌당 2만원)을 사주면서도 반신반의했다”고 회고했다.

인도네시아의 '쓰레기 없는 마을'인 서부자바주 수방 지역 탄중왕이에 설치된 분리 수거용 쓰레기통 한 벌.

외부의 우려를 씻듯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첫째도 교육(공동체 기반 쓰레기 관리), 둘째도 교육(분리수거의 의미), 셋째도 교육(쓰레기 재활용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올라서자 새마을재단은 지난해 4월 트럭 한 대를 선물했다. 그 전엔 오토바이를 개조해 얹은 짐칸에 쓰레기를 옮기느라 넓은 지역을 다 챙길 수 없었다. 주민들 주도 아래 이뤄진 사업을 아예 무시하거나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챙긴 새마을재단의 지원도 사업 성공의 디딤돌이었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이 '쓰레기 없는 마을' 탄중왕이에 선물한 쓰레기 수거용 노란 트럭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쓰레기 분리 수거 창고. 수방=고찬유 특파원

기자가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침 새마을재단을 통해 마을에 온 경북 지역 대학생들이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학교 운동장 바닥을 시멘트로 평평하게 깔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떠나는 날엔 염소를 잡고 각자 장기를 뽐내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탄중왕이가 속한 수방은 5년 넘게 교류를 맺어온 경북 김천시와 2017년 10월 자매결연을 맺었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수방 지역의 '쓰레기 없는 마을' 탄중왕이에서 열린 마을 잔치에 놀러 온 아이가 웃고 있다.

한결같은 교류와 신뢰가 스며든 마을은 주민들의 자랑에 걸맞게 깨끗했다. “길가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으면 부끄러워요. 쓰레기는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하면 우리에게 좋은 선물이 됩니다.” 주민들이 몸소 얻은 교훈은 뻔하지만 귀하다.

경북 지역 대학생이 인도네시아 수방 탄중왕이 마을에서 태극기 벽화를 그리고 있다.

수방(인도네시아)=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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