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200명 확성기 없는 ‘침묵집회’
청와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집회ㆍ시위를 자제해 달라며 28일 확성기 없는 ‘침묵집회’를 벌였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부암동, 평창동 주민 200여 명은 이날 오전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주민대책위원회 총회를 열어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매일 수차례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회와 시위를 하는 동네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살수 있겠냐”며 “청와대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집회ㆍ시위의 고통을 참아 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경찰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지역은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전국에서 모여든 시위대들로, 하루에도 수차례의 기자회견과 대규모 행진이 벌어진다. 고성능 앰프를 통해 울려 퍼지는 소음은 주민들에게 일상화된 고통이다. 마이크를 사용해 구호를 외치고, 돌아가며 투쟁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잦다. 어떤 때는 소음이 밤늦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주민들이 확성기나 앰프를 켜지 않고 집회를 한 것도 과도한 소음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잦은 시위가 자녀의 학습권이나, 인근 상권에 미치는 악영향도 걱정한다. 청운동 주민 김모씨는 “주변에 학교나 어린이집도 많은데, 애들이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 아이들은 밤샘 농성을 한 이들이 줄지어 빨래를 너는 풍경을 보며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집회ㆍ시위가 빈번하게 열리니 가게에는 손님이 줄었고, 가게를 내놔도 안 나간다”고 전했다.
원래 청와대 일대는 시위가 엄격하게 제한된 한적한 마을이었다. 서울 도심에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도 경찰은 광화문에서부터 ‘차벽’을 설치해 청와대 행진을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해 시위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법원은 국정농단 촛불이 타올랐던 2016년 12월 청와대 인근 시위를 허용했다. 이후에도 법원은 청와대 일대에 대한 경찰의 집회금지 결정을 번번이 뒤집었다. 결국 경찰은 청와대 주변 집회와 시위를 허용했다.
시위대와 주민들의 갈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달 초에는 한 마을주민이 야간농성을 하던 민주노총 산하 톨게이트 노조원을 말다툼 끝에 폭행해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이형 사직동 1통장은 “시위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들은 어쩌다 한번 시위를 하러 올 수 있어도 이곳 주민들은 낮에도 밤에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언제나 시위에 시달린다. 우리들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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