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두(오른쪽)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일 방한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갖기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몇 주 전 비공식적으로 만난 미국 정부 측 인사들은 상당한 수위의 경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ᆞ지소미아)이 종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분이 상할 정도였지만 한편에선 다른 생각도 들었다. 미국이 저리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데 그것을 거스를 수 있을까. 이 정부도 어쩔 수 없이 과거 경로를 관성적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필자의 예상을 뒤엎고 협정 종료 결정이 나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몇 년을 복기해 보자.

지소미아는 박근혜 정부 시기 미국의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처음에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밀착했다. 2015년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미국은 이 장면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을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이후 드러난 중국의 태도와 우리 정부의 반응에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했음에도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가 이루어지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대한 기대를 버렸던 것 같다. 빠른 속도로 사드 배치와 지소미아가 추진됐다. 불과 1년여 만에 극과 극을 오가는 결정이 이뤄졌다.

역시 미국만이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가 원하는 대로 지소미아를 체결하고 과거사 문제도 신속히 마무리 짓고자 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재판 거래로 의심되는 국내 정치적 문제도 발생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다. 과거와 달리 한미일 안보협력과 한일관계를 이유로 강제징용 관련 사법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동을 일절 진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책 스탠스가 일본 아베 정권의 불만을 초래했다. 이후 아베 정권은 우리 경제를 향해 비수를 던졌다.

이때 많은 사람은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위해 우리에게 지소미아와 과거사 문제 해결을 압박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마땅히 그리 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많은 한국민은 미국의 중재 거부를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의 하위에 두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엄청난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묵묵히 견뎠고, 얼마 전에는 성주 사드기지 공사도 어렵사리 재개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일본을 두둔하는 미국이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했어야 했을까.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선 자존심을 버리라 한다. 도대체 북한이 핵을 가지고 뭘 할 수 있기에 일본에까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건가. 전쟁이 일어나도, 핵을 한 방 얻어맞아도 우리는 스스로 싸울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지금의 군사분계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막대한 희생이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극단적 시나리오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린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지소미아 이후 한미동맹이 와해되기 시작할 것이라 우려한다. 심지어 미군 철수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 없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절대 빼지 않을 것이다. 중국 견제용으로 주한미군의 가치는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만에 하나 주한미군을 빼겠다고 하면 그 때 가서 핵무장을 언급하면 된다. 그러면 돌아온다.

동맹이라 할지라도 주장할 것은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존중받는다. 그동안 같이 살아 온 세월 때문에라도 한미는 서로를 버릴 수 없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한미 간에 건강한 관계 형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도대체 지소미아가 뭐기에 한미동맹의 와해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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