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기자 초년 시절, 취재 약속으로 만난 한 이공계 대학 교수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연구실 문을 열 때 어떤 느낌이었냐”고 물었다. 질문 의도를 간파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사실 특별한 느낌이랄 게 없기도 했다. 답변을 머뭇거리자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교수 연구실에 들어오는 게 보통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기자는 어떤지 궁금했다”고.
대학 교수 연구실은 대개 같은 층에 몰려 있다. ‘연구하는 곳이니 정숙하시오’ 같은 안내문도 복도에 종종 붙어 있다. 굳게 닫힌 문이 일렬로 쭉 늘어선 회백색 복도를 정숙한 태도로 걸어오는 동안 학생들은 벌써 주눅이 든다고 교수는 말했다. 기자로서 연구실을 방문했던 당시엔 주눅들 이유가 없었지만,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보니 맞는 얘기였다. 기억 속 교수 연구실은 부담스러운 곳이었고, 교수 역시 어려운 존재였다.
학교에서 교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대학원생은 지도교수가 매기는 성적 한 줄, 평가 한 마디에 미래가 좌우될 수 있다.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당해도, 억울하게 막말을 들어도, 편파적인 대우를 목격해도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학 연구실의 학술논문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국제학회에까지 동행할 수 있었던 것도 교수가 그 모든 과정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 딸이 누린 ‘입시 품앗이’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사회에서 교수 인맥은 굳건한 카르텔이 된 지 오래다. 한 누리꾼은 “한국 대학원생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교수 카르텔 못 이긴다”고 자조했다.
교내가 너무 좁아진 교수의 영향력은 학교 밖으로 나와 거침 없이 뻗어가고 있다. 정계에도 재계에도 교수 출신이 넘쳐난다. 정부 부처 장∙차관과 청와대 보좌진 인사 때마다 교수들 이름이 오르내리고, 기업 사외이사와 고문 자리는 대다수가 교수 몫이다. 입맛에 맞는 학교 밖 요직에 별다른 제한 없이 진출하고, 교외 활동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전문가라는 이유로 발언 몇 마디, 회의 참석 몇 번만으로 많은 돈을 받기도 한다. 연금으로 노후도 보장 받는다. 보통 사람들은 밥벌이 한 자리 지켜내기도 버겁고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은 언제 받을까 싶은데, 이런 ‘신(神)의 직업’이 따로 없다.
교수가 이처럼 많은 혜택을 누리는 걸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묵인해온 이유는 학자이자 지성인에게 거는 기대 때문이었을 터다. 범접할 수 없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만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거라 여겼고, 언행은 늘 올바르고 정의로울 거라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 믿음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교수들은 정권의 비선 실세 앞에 머리를 숙였고, 연구비를 사적으로 유용했으며,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주 업무인 연구논문마저 표절했고, 미성년 자녀를 논문 저자로 넣는 걸 관행으로 삼았다. 한 기업인은 “지역 학계를 잘 아는 인사가 필요해 대학 교수 출신을 채용했는데, 별다른 기여 없이 일주일에 며칠씩 골프 치면서 억대 연봉을 챙겨간다”고 허탈해 했다.
전문가로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교수들의 사명감은 어느새 그들만이 누리는 특권으로 변질됐다. 특권은커녕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비전임 교수와 강사들이 여전히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교수 사회를 바라보는 민심의 분노는 포화 상태다. 사회 지도층의 견고한 카르텔은, 자신은 그 안에 못 들어갔지만 자식은 끼워주고 싶은 부모 심정을 자극해 입시지옥을 키워냈다.
조 후보자가 민심의 비난에 고통스러울지언정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고 언급한 “짐”은 자신의 다른 얼굴을 가린 채 교수로서 최고의 길을 걸어왔기에 짊어질 수 있었다. 그가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짐이 교수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의 또 다른 이름이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임소형 산업부 차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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