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프로젝트’로 2년 간 36개국 투어
‘행동의 날’ 정해 상징적 장소서 협연도
첼리스트 요요 마. 크레디아 제공

25일(현지시간) 오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중심부에 놓인 헐벗은 구조물 ‘베이루트의 집’. 그 난간 위에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 마(64)가 현지 예술가 세 명과 악기를 들고 섰다. ‘베이루트의 집’은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을 상징하는 장소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인 구역을 나누는 선이 이 인근에 그어지면서 집중 포화를 맞았다고 한다. 벽면이 모두 부서진 채 겨우 기둥과 천장만 남아 연주를 하기엔 다소 아슬아슬했지만 요요 마의 활은 거침이 없었다.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레바논 가수 오마이마 알 칼리와 우드 연주자 지아드 알 아마디에, 시리아 출신 클라리넷 연주자 키난 아즈메의 얼굴에도 불안감 대신 밝은 기운이 맴돌았다. 형형한 이들의 연주, 노래 소리에 길을 지나던 시민들은 저절로 발걸음을 멈췄다.

요요 마가 전날 레바논 고대도시 비블로스에서 열린 국제 음악제에서 연주를 마친 후 하루 만에 ‘베이루트의 집’에 선 건 그의 이번 투어가 단순한 연주 목적이 아니어서다. 요요 마는 지난해 8월부터 6개 대륙 36개 도시를 돌며 ‘바흐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연주회 이튿날을 ‘행동의 날(Day of Action)’로 정해 각국의 상징적 장소와 거리를 돌며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주로 현지 예술가와 학생, 시민단체 등과 협업해 음악으로 사회 문제를 짚는다.

2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집’에서 첼리스트 요요 마(맨 오른쪽)와 현지 음악가들이 연주하고 있다. 데일리스타 레바논 홈페이지 캡처

요요 마는 ‘베이루트의 집’ 외에도 레바논의 한 공원에서 학교 폭력을 고발하는 아이들과 현지 성악가, 연주자들을 한 데 모아 연주회를 열었다. 지난 4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선 “이제 우린 문화를 통해 장벽이 아닌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외치며 미국 트럼프 정부의 반 이민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요요 마의 다음 행선지는 다름 아닌 한국. 다음달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바흐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데 이어 9일엔 비무장지대(DMZ) 인근 경기 파주 도라산역에서 ‘행동의 날’ 행사를 연다. “남북한 경계에서 바흐를 연주하고 싶다”(지난해 한 언론사 인터뷰)는 그의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첼리스트 요요 마(뒷줄 오른쪽)가 2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거리에서 현지 학생들과 함께 콘서트를 하고 있다. 콘서트에 참여한 아이들은 학교 폭력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고, 현지 음악가들은 직접 작곡한 곡을 들고 나와 선보이기도 했다. 베이루트=신화ㆍ연합뉴스

요요 마는 어쩌다 ‘평화 전도사’를 자처하게 된 걸까. 요요 마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평생 경계인으로 살아 온 경험 때문”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성장기에는 서로 다른 언어와 메시지 속을 헤맸습니다. 어머니는 개신교도, 아버지는 불교도였고 저는 성공회 신자로 자라면서 정신적 세계관의 차이도 느꼈죠. 최근 들어 세상의 분열과 걱정이 너무 크다고 느끼면서, 음악으로 세상의 차이를 좁힐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요 마가 이번 투어를 6개 대륙 36개 도시로 특정한 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6개곡 36개 악장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들 가운데 바흐를 주인공 삼은 까닭을 물으니 “바흐의 음악은 온전한 객관성과 주관성, 분석과 공감, 의식과 잠재의식을 넘나든다”며 “경계를 허물고 창의력을 자극하는 그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과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요 마는 “바흐만큼 우리에게 생산적 대안을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첼리스트 요요마. 크레디아 제공

한국에서의 ‘행동의 날’ 행사가 열리는 도라산역은 그가 발을 디뎠던 여느 지역만큼이나 상징적인 곳이다.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5㎞ 떨어진, 민간인통제선 내에 있는 유일한 철도역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분단 상황을 유독 안타까워했던 그는 이번 행사에서 국악인 김덕수, 안숙선과 ‘아리랑’을 협연하며 이산의 아픔을 달래고 평화를 기원한다. 요요 마는 “한국은 차이와 분열이라는 과제의 해결이 시급한 곳이기에 공연하기로 마음 먹었다”며 “바흐의 음악이 우리를 한 데 묶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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