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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예산 깎이자 비정규직 장애인부터 감원한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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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예산 깎이자 비정규직 장애인부터 감원한 금감원

입력
2019.08.28 04:40
수정
2019.08.28 08: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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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 지침에 비장애인만 전환… 장애인 사무보조원 80명 중 61명 줄여

금융감독원 전경.
금융감독원 전경.

지난해부터 운영 예산이 깎이기 시작한 금융감독원이,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지침까지 겹치자 지난 15년간 원내에서 사무보조 역할을 해왔던 80여명의 비정규직 장애인 인력을 우선적으로 없애기로 하고 이미 75% 가량을 감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현재 정부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맞추지 못해 과태료를 내고 있는데, 금감원 직원들은 예전 장애인 직원들이 맡던 업무를 떠맡아 곳곳에서 업무 차질을 호소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상시ㆍ지속 업무로 보기 어렵다”

27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금감원 내 ‘장애인 사무보조원’은 지난 15년간 각 부서에서 각종 민원 접수 및 문서 수발 등을 맡아왔다. 월 6,700여건에 이르는 금감원 접수 민원을 분류해 전산에 입력하고, 이를 담당 직원에게 알려주는 업무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비정규직 2년제 계약 사원 신분이다. 최저임금 수준(월175만~195만원)의 월급을 받고, 2년 계약기간도 ‘3개월 단위’ 쪼개기 근로계약을 통해 8번의 계약 연장을 해야만 채울 수 있었다. 예전부터 근로기간이 2년을 넘으면 법상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점을 금감원이 꺼려 2년을 채우면 예외 없이 그만둬야 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장애인들 사이에선 그나마 2년을 일할 수 있는 자리로 인기가 적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이 장애인 사무보조원과 작성한 근로계약서. 장애인 사무보조원은 통상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도, 3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빨간 네모)을 맺는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했다.
금융감독원이 장애인 사무보조원과 작성한 근로계약서. 장애인 사무보조원은 통상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도, 3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빨간 네모)을 맺는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했다.

이들의 입지가 흔들린 건,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금감원에 내려오면서부터다. 가이드라인은 ‘상시ㆍ지속적 업무’를 하는 경우, 모두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이에 금감원은 외부와 내부 인사 각 4명씩으로 구성된 ‘정규직 전환 심사위원회’를 열고 계약직 사원들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논의했다. 당시 위원회는 142명의 비장애인 계약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장애인 직원들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외부위원들은 모두 “장애인 직원들이 상시ㆍ지속적 업무를 해왔다”며 정규직 전환을 권고했지만, 결국 심사위원회는 “이들의 업무가 단순보조 업무여서 정규직으로도, 계약직으로도 고용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아예 일자리를 없애기로 결론 내렸다.

여기에는 금감원의 예산 삭감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감원 예산을 전년 대비 1.1%(약 36억원), 올해는 2%(약 70억원) 삭감했는데, 정규직 전환 심사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이 장애인 고용 축소 필요성으로 예산상 어려움을 내세웠다”고 전했다. 지난해 사무보조원으로 일했던 장애인 A씨 역시 “금감원 직원이 정규직 전환 불가 이유로 ‘예산이 없어서’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80여명에 달하던 장애인 사무보조원은 작년부터 금감원이 차례로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현재 19명까지 줄어든 상태다.

금융감독원 비정규직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금융감독원 비정규직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장애인 고용의무도 외면

이 같은 금감원의 행태는 내부에서조차 반발을 사고 있다. 당장 장애인 사무보조원이 하던 업무를 넘겨 받은 정규직원들은 업무 차질을 호소하고 있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부서간 업무 협조가 많은 금감원 내에서 상시적인 문서ㆍ민원 관련 업무를 장기간 수행하던 사무보조원이 사라지면서 직원들이 업무 진행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이들의 업무를 단순보조라고 판단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 내 공지사항 게시판에는 ‘사무보조원이 없어 업무 협조를 요청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이 계약직으로 고용하던 '장애인 사무보조원'들이 잘려나가고, 금감원 내 공지사항에 민원 업무 관련 협조를 요청하는 글이 지난달 15일 올라왔다. 민원 업무는 장애인 사무보조원들이 담당하던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계약직으로 고용하던 '장애인 사무보조원'들이 잘려나가고, 금감원 내 공지사항에 민원 업무 관련 협조를 요청하는 글이 지난달 15일 올라왔다. 민원 업무는 장애인 사무보조원들이 담당하던 것이다.

금감원이 그간 정부의 장애인 의무고용 정책 취지를 사실상 무시해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장애인고용법은 ‘장애인에게 근로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공공기관에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전체 직원의 3.1%)을 규정하고 있다. 안정적인 근로의 기회를 주려면 정규직 고용이 마땅하지만 금감원은 15년간 의무비율을 넘기는 수준의 계약직 고용으로 대처해 온 셈이다. 이마저도 지난해부터는 아예 장애인 고용을 포기한 채 현재 금감원은 의무비율을 못 맞추는 대가로 과태료를 내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애인 일자리를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도 낮은 계약직으로 유지해오다 정규직 전환 및 예산 이슈가 발생하자 일자리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건 금감원이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 자체를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전환 심사 과정에서 다른 방법으로 장애인 일자리를 유지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며 “이후 각 부서나 팀에서 장애인이 가능한 업무에 대한 수요를 조사 중이고, 의견이 모이면 다시 장애인들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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