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를 떠나며
현지인들이 딤투라 부르는 읍내.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길을 오가는 꽤 번잡한 타운이지만,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 마을이다. 이 곳을 지나 두어 시간 즘 더 가면 에티오피아인들이 최고의 커피로 손꼽는 구지라는 이름의 커피 산지가 나온다. 최상기씨 제공

이르가체페에서 며칠을 보낸 후 좀 더 깊은 산악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르가체페 읍내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네댓 시간가량 가면 제법 시끌벅적한 마을이 나온다. 구글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현지인들은 딤투라 부르는 꽤 큰 타운이다. 이 곳부터는 이르가체페와 다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전히 2,000m에 이르는 고지대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좀 더 가파르다. 산 언덕으로는 목축을 위한 초지와 밀밭이 푸른 하늘 아래 연둣빛으로 펼쳐진다. 차보다는 말들이 주요 교통수단이 되고, 이르가체페보다 붉은색을 띄는 흙이 뽀얀 먼지를 일으킨다. 구지 존의 함벨라라는 지역이다.

우리에게는 이르가체페가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가장 낯익은 커피 산지이지만, 과거 이 나라 사람들이 최고의 커피라고 여겼던 곳은 하라르다. 수도 에티오피아 동쪽 홍해와 소말리아와 인접한 커피 산지로, 그 유명한 모카 하라의 원산지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가 20대 젊은 나이에 절필을 선언하고, 커피 무역상으로 활동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초콜릿의 중후한 부드러움과 감미로운 와인의 향, 잘 익은 열대과일의 달콤함을 함께 머금어 에티오피아 대표 커피로 불렸던 하라르. 하지만, 오랜 가뭄과 척박한 재배 환경으로 인해 최근에는 하라르 커피를 찾기 쉽지 않으며, 하라르로 둔갑한 가짜들이 많아 더욱 접하기 어려운 커피가 됐다.

근래 들어 하라르를 대신해 에티오피아 최고 커피 산지로 부상한 곳이 구지 지역이다. 커피 산업에 종사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최고의 커피를 물어보면 대개 구지를 손꼽는다. 구지는 넓게 보면 시다모 지역에 속한다. 시다모는 에티오피아 남부 지역의 상당히 넓은 면적으로, A, B, C, D, E 등 이르가체페를 돌아가며 감싸듯 위치한 다섯 개의 존으로 나뉘는데 이 중 A존의 일부가 구지이다. 이 지역의 커피는 다른 시다모에 비해 훨씬 강렬하고, 화려한 휘발성의 꽃 향을 갖고 있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시다모를 버리고 구지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함벨라뿐 아니라 샤키소, 우라가, 케르차 등의 커피 산지들이 구지 커피를 대표한다.

함벨라의 어느 커피 가공시설로 들어왔다. 수확철이라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찐득하게 단물이 배어 나온 커피 체리를 햇볕에 고루 말리고 있었다. 그런데 커피 건조대에서 커피를 말리는 상당수가 앳돼 보이는 아이들이다. 열 살 내외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네댓 살 밖에 안돼 보이는 아이들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낯선 이방인을 주시한다. 왜 아이들이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끈적한 커피 체리를 뒤집어 햇볕에 고루 말리거나, 드문드문 눈에 띄는 미성숙 체리를 골라낸다. 키가 작아 일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은 건조대 아래로 떨어진 커피 열매를 줍는다. 작업량에 따라 다르지만, 이렇게 일하면 하루 600원가량을 일당으로 받는다고 한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일을 하고 있지만, 싱그럽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힘든 표정을 발견하기 어렵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에티오피아 커피들이 이런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생산된다. 최상기씨 제공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각국의 협정을 통해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노동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전 세계 아동노동은 줄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강제로 끌려가서 노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점차 부모나 본인의 뜻으로 일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커피 농장의 일은 금광이나 열악한 환경의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더럽거나 위험하거나 어렵지 않다.

월드뱅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에티오피아에서 하루 1.9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는 극빈층 인구는 약 27% 정도에 이른다. 에티오피아 인구가 1억이 넘으니, 2,700만명 이상의 적지 않은 숫자다. 노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비중은 이 나라 전체 아동의 29% 정도이며, 이들 중 35%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만 하는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평균 주당 29시간가량 일을 하는데, 일만 하는 아이들은 35시간,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아이들은 19시간씩 일을 한다.

커피 처리시설의 관리자에게 왜 아이들이 이 곳에서 일을 하는지 물었다. 그는 한 단어로 대답했다. 빈곤. 순간 괜한 질문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가난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왜 일을 하겠는가. 덧붙여 물어보지 않았지만, 관리자의 설명은 이어졌다. 다행히 이 마을의 아이들은 대개 학교를 다닌다. 학교가 끝나면 이 곳에 모여 그들의 부모와 함께 일을 한다. 아이들은 일도 같이 하지만, 해질녘까지 뛰어 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집단농장이 없다면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도시로 나갈 것이다.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국제 협정에 아동노동이 금지돼 있지만, 집단농장은 가난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커뮤니티 역할도 하고 있음을 이해해달라.

그의 설명을 듣고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만큼 맑은 얼굴.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끊임없이 까르르 웃는다. 이방인이 신기한 듯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밝은 표정 때문인지 모두 건강해 보인다. 지구 반대편 에티오피아의 깊은 산골 오지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커가고 있다. 아동노동은 21세기 온 지구가 협력하여 없애야 할 단어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강제로 금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아이들이 다치거나, 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힘들지 않다면 아이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그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동노동의 근본 원인이 경제적 궁핍이라면 아이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아이들의 식량이 되고, 옷이 되고, 학교에 다니는 수업료가 된다. 아이들은 커피나무를 키우고, 커피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린다. 우리가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신다면 그것은 공정한 거래가 되어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키우는 데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모든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에필로그.

에티오피아 커피 산지에서 돌아온 후, 서울에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셨다.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열대 우림의 자연 풍광들, 흙먼지 속에 흔들리며 달려왔던 멀고 험한 길들, 숲 속 자연 그대로 키우는 커피나무와 붉게 잘 익은 커피 열매, 너무나 가난한 커피 농가의 집과 세간살이, 그리고 함벨라에서 만난 아이들의 밝은 얼굴들이 검게 일렁이는 커피 안에 모두 녹아 있었다.

그들의 삶을,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에티오피아 커피 산지를 다녀오고 난 후에 마시는 커피는 분명 그 전과 달랐다. 어쩌면 우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지불한 돈은 단순히 컵에 담긴 한 잔의 커피가 아니라, 에티오피아 커피 농부와 그 가족들의 거친 삶, 노동, 고통과 눈물의 대가일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커피는 달콤하고 화사한 향미만큼 은근한 쓴 맛도 함께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커피의 고향, 커피의 성지(聖地)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는 진정한 커피의 맛을 일깨워준 매우 특별한 곳이었다.

* [커피벨트를 가다] 에티오피아 편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다음 회부터 커피 대국 브라질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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