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압박과 시위 지지 직원들 사이에 껴 갈팡질팡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경찰이 실탄을 발사하는 상황에 이르는 등 출구를 찾지 못한 채 3개월째 이어지면서 중국 정부와 임직원 사이에 낀 채 갈팡질팡하는 기업들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고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시위 초기만 해도 이유를 묻지 않고 휴가를 허용하는 등 직원들의 시위 참여를 지지했던 기업들이 이제 중국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시위 참여 금지 입장으로 돌아서는 등 시위 장기화로 인한 고충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23일 홍콩 센트럴 차터 가든에 모인 5,000여명의 시위대 중에는 송환법 반대 시위의 상징인 검정 옷 외에 비즈니스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회계업계가 주도한 이날 시위는 글로벌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아시아태평양ㆍ중국 지역 회장 레이먼드 차오가 임직원에게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다음날 이뤄졌다. 시위에 함께 참여한 케네스 렁 홍콩 입법회(국회) 의원은 “이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는 징계나 해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게 현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던 홍콩의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세계적인 빅4 회계법인인 PwC, 딜로이트(Deloitte), KPMG, 언스트앤영(Ernst&YoungㆍEY)은 16일 이들 회사 직원들의 모금으로 홍콩 애플 데일리 신문에 실린 시위 지지 전면 광고가 회사의 입장과 관련이 없다는 해명성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홍콩 대표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 최고경영자(CEO)가 직원들의 시위 참가에 대한 중국의 압박으로 퇴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민용항공총국(CAAC)은 시위에 참여한 직원을 중국 본토행 비행 업무에서 배제하라고 명령했고 중국 본토에서는 사실상 관제 불매 운동이 진행됐다.
홍콩 컨설팅 업체 스티브비커스앤어소시에이츠의 CEO 스티브 비커스는 “중국 정부는 사업을 국가와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홍콩 내 기업들로서는 중국 정부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말했다. 이에 따라 홍콩 내 기업들은 직원들이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신청하면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데다 중국 정부가 기업에 압력을 가하면 직원 간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홍콩 인구의 약 4분의 1인 170만명이 시위에 참여해 급기야 경찰이 물대포를 꺼내 드는 상황까지 펼쳐지면서 홍콩 자국 기업은 물론 외국계 기업들까지 잔뜩 움츠러든 모양새다. 크리스챤 디오르, 티파니앤코, 샘소나이트 등 센트럴 지역 국제금융센터에 입점한 일부 브랜드는 직원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또 미국 화장품 에스티로더 계열의 바비 브라운은 매장 직원들에게 시위대로 오해 받지 않도록 브랜드의 상징인 검정 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했다.
홍콩 시위가 열흘 만에 재격화되면서 중국은 홍콩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다시 강력하게 보내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본토가 홍콩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덩샤오핑의 발언을 들어 중국 정부의 홍콩 사태 관여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통신은 25일자 시론에서 “최근 홍콩에서는 국가 주권과 사회 번영과 안정을 위협하는 폭력 행보들이 만연하고 있는데 이는 홍콩이 침체에 빠질 위험을 가져다준다”라며 “홍콩에 대한 개입은 중앙정부의 권력일 뿐만 아니라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외교부는 26일 홍콩에 1단계 여행경보(남색경보ㆍ여행유의)를 발령한다고 밝혔다. 이는 4단계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시위 동향에 따라 추가 발령 또는 해제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는 “홍콩 전역에서 시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물리적 충돌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국민 안전이 우려된다”며 “체류 중인 국민은 시위가 안정될 때까지 신변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홍콩을 여행할 국민도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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