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나협회 “훗날 한국이 돈만 벌어갔다는 평가 안 할 것”
“클래식의 황무지나 다름 없지만, 머지 않아 커피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길 겁니다.”
지난 6월 베트남 호찌민국립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부 꾸인 녀 안(23)씨는 앞으로 자신의 앞날에 펼쳐질 일에 잔뜩 부풀어 있다. 성악을 더 공부하고 싶어도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또 성악 전공자를 뽑는 곳이 많지 않아 “동네 커피숍에서 ‘서빙’ 하고 있을 상황”이었지만, 요즘 한국어 공부 삼매경이다. 그 와중에 한 줄기 빛을 만나 한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27일 출국해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대학원 생활을 앞두고 한국이름도 하나 지었다. 부은혜.
그 ‘빛’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중심이 된 베트남한인메세나협회. 안효선 회장은 “저렴한 인건비와 베트남 땅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고도 이렇다 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찾지 못한 기업인들이 베트남과 한국의 미래 관계를 위해 의기투합했다”며 “그 첫 결과물로 부은혜씨를 선발, 높은 수준의 한국 음악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는 한국을 본부로 하는 국제음악교육협력단, 70여 오페라단과 성악가 등 300여 개인과 단체로 이뤄진 국내 최대 음악단체인 한국오페라리더스협회가 함께하며, 부씨는 경상대 음대에서 석ㆍ박사 5년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하게 된다. 협회는 향후 베트남에서 자선 음악 공연, 영재 발굴ㆍ후원 사업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한국 클래식을 베트남에 자리를 잡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부씨의 꿈은 오페라 무대를 섭렵한 뒤 베트남으로 돌아와 성악과 교수가 되는 것. 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어 대중음악보다는 클래식이 훨씬 앞서지만, 그 사실을 아는 베트남 사람들은 많지 않다”며 “돌아와 더 많은 제자들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고, 고1 때 한 성악 대회에서 베트남 민요로 대상을 거머쥔 뒤 길을 굳혔다.
베트남에는 프랑스 식민 영향으로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등 주요 도시에 오페라하우스가 있지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수는 그들이 이런 시설을 통해 느끼는 자부심에 비하면 대단히 제한적이다. 수 백 개의 대학이 있어도 음대가 있는 대학교는 손에 꼽힌다. 교수들도 대부분 한국 등 외국인들이다. 부씨는 “다른 나라에서는 음악을 전공한다고 하면 우러러보지만, 베트남에는 그게 뭐 하는 데냐고 묻는 수준”이라며 “경제가 더 성장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클래식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들과 한국의 음악단체가 함께 하는 이번 사업은 베트남을 상대로 한 한국 음악계의 거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최승우 조선오페라단장 겸 국제음악교육협력단장은 “한국에는 전문 인력이 너무 많아서 문제이고, 베트남은 너무 없어서 문제인데, 이를 서로 활용하면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문화, 특히 클래식을 베트남에 심고 키워 훗날 ‘한국은 함께 살았다’, ‘돈만 벌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베트남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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