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
수제맥주를 맛볼 때는 색이 연한 맥주로 시작해서 짙은 색의 맥주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북레시피 제공

“전엔 향이 강하고 맛이 독특한 맥주를 많이 선호했지만, 최근엔 질리지 않고 오래 마실 수 있는 고소하고 가벼운 복고 스타일의 맥주를 찾는 이가 많다.”

2004년 서울 공릉동에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을 연 국내 첫 여성 브루마스터(Brewmasterㆍ맥주양조사) 김정하(39) 대표는 26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한 수제맥줏집에서 열린 ‘맥주 만드는 여자’(북레시피 발행)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수제맥주시장(소비량)은 2012년 7억원 규모에서 2017년 200억원으로 30배 가까이 성장했다. 2002년 1곳에 불과했던 수제맥주 양조장도 100곳으로 늘었다. 수제맥주란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하는 맥주와 달리 독립된 양조장에서 전통 양조 기법으로 독특한 공법과 재료를 더해 소규모로 만드는 맥주를 말한다. 2010년대 초반 수입맥주가 대거 들어오면서 다양한 맛의 맥주를 경험한 이들이 수제맥주를 찾으면서 시장도 커졌다. 특히 과일향이 풍부하고, 탄산이 적고, 쓰고 진한 맛이 나는 에일 맥주(맥주 통 위쪽에서 효모를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제조한 맥주)가 초기 우리나라 수제맥주 시장을 주도했다. 김 대표는 “에일 맥주는 발효가 빨라 단기간 내 만들어서 팔 수 있고 생산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한국의 반주 문화에 잘 맞는 전통적인 라거 맥주(저온 장기 숙성 발효 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라거 맥주의 대표격인 필스너와 헬레스, 둔켈 등은 보리 맛이 강해 고소하고, 목 넘김이 비교적 부드럽다. 향과 산미는 떨어지지만 음용성이 뛰어나다. 김 대표는 “독특하고 진한 맛이 나는 맥주는 마시는 데 한계가 있다”며 “특히 한국에서는 치킨에 곁들여 맥주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줄 수 있는 라거 맥주가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가세(從價稅)에서 종량세(從量稅)로 바뀌는 주세법 개정안이 내년 시행되면 수제맥주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종량세는 주류의 양 또는 주류에 함유된 알코올 농도 등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생산량이 많은 양조 대기업이 유리하다. 김 대표는 “맥주시장의 양극화가 더 커질 것”이라며 “수제맥줏집들은 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 유통하고, 직영 펍을 늘리는 식으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정하 대표가 직접 만든 페일 에일 맥주인 ‘도담도담’을 소개하고 있다.

전통조리학을 전공한 김 대표가 수제맥주에 빠지게 된 것은 제조업에서 50년 가까이 종사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맥주 기계를 구경하자고 한 게 계기가 됐다”며 “처음 수제맥주를 먹어보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2016년 그가 만든 ‘벚꽃라거’는 그 해 인터내셔널 비어컵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어 그는 블루베리, 크렌베리, 코코아파우더 등을 넣어 만든 맥주 ‘다복이’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인 월드 비어컵 대회 파이널에 한국인 최초로 올라갔다. 2017년 도담쌀(저항전분과 식이섬유가 많은 벼 품종)을 이용해 만든 페일 에일인 ‘도담도담’도 올해 호주국제맥주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수제맥주는 종류에 따라 맛과 향, 색 등이 다양하다. 왼쪽부터 바이젠, 둔켈, 헬레스, 둔클레스. 북레시피 제공

수제맥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맛의 맥주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 김 대표는 “수제맥주 라벨에 적힌 원재료를 잘 살펴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쓴 재료의 맥주를 선택하면 좋다”고 귀띔했다. “맥주는 삶과 비슷해요. 내고 싶은 맛을 상상해서 레시피를 만들고, 그 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듯 삶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니깐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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