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개최를 둘러 싼 여야의 셈법과 관계없이 그에 대한 임명 여부는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권한이다. 문제는 조 후보자 관련 사안을 보는 시각이다. 여권은 조 후보자가 낙마하면 정기국회와 선거를 앞둔 시점에 레임덕을 포함해 최악의 상황까지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이는 검찰개혁을 위해 조 후보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차원을 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 입장에서는 조 후보자의 낙마 이후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 공세의 수위를 한층 높임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기본 프레임들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상황은 한 가지 변수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조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면 여권 입장에선 오히려 후폭풍이 심각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조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에는 여야의 쟁투에서 밀리는 정치공학적 차원의 위기가 일시적으로 올 수 있지만 오히려 개혁 동력을 바탕으로 국정의 대전환을 꾀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법에 입각한 국정운영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과 사법의 영역은 같은 방향을 지향하지 않을 때도 많다. 관점과 입장에 따라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조 후보자에게 제기되는 의혹은 사실인 것도 있고, 부풀려진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선악의 차원에서 볼 것인가, 다름의 차원으로 볼 것인가도 문제지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론과 민심이 만만치 않다는 팩트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가 정의ᆞ공정ᆞ평등 등의 가치를 지향하므로 조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면 이러한 정권의 정체성이 무너짐으로써 정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원칙론은 설득력 있는 논리다. 이러한 원론적 지적의 연장일 수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다. 민주주의는 대표성ᆞ책임성ᆞ반응성을 기본 원리로 한다. 이 중에서 주권자인 시민이 특정 이슈에 대해 갖는 공론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이 반응성이다. 민심에 반응하지 않으면 정권은 오만의 길로 접어든다.
시민의 생각이 그릇된 논리와 팩트에 근거할 수 있다. ‘옳지 않은 생각’이 여론을 지배하고 공론장을 휩쓴다면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우(衆愚)정치의 전형이다. 또한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이기도 하다. 조 후보자를 옹호하기 위해 이러한 논리를 동원할 수 있다.
반대 관점의 논리도 있다. 이른바 위임민주주의의 문제다. 위임민주주의는 아르헨티나 학자 오도넬이 제기한 이론으로, 민주주의에서 권력자가 선출권력이라는 정당성에 기반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주권자의 의지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를 일삼는 민주주의의 위험한 행태를 지적한 말이다. 조 후보자를 임명하는 행위는 국무위원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적법하다. 그러나 시민의 의지에 반한다면 법치에 벗어나지 않을지라도 위임민주주의의 형태일 수 있다는 논리다.
어떠한 논리를 채택할지는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핵심의 판단 영역이다. 그러나 집권핵심이 훌륭한 후보라고 생각해도 민심의 인식이 부정으로 형성되어 있다면 그 자체가 결격이다. 이는 정치의 영역이다. 행정의 영역과 사법의 영역이 정치 영역과 구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정권은 중반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형태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여하히 대처하느냐가 향후 정권이 급전직하 하느냐, 국정동력의 탄력을 받느냐와 직결된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주권재민을 명시하고 있다. 민심의 바다를 거스르면 배는 좌초한다. 권력은 민심의 향배를 칼날같이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권에게 승산이 있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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