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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ㆍ플랫폼노동자 첫 연대 실험…“불평등 해소 마중물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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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ㆍ플랫폼노동자 첫 연대 실험…“불평등 해소 마중물 되길”

입력
2019.08.27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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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금융노조, 우분투재단 설립

자차보험 가입 안되는 배달노동자

사고 때 차량수리비 50% 지원키로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조 사무실에서 김현정(왼쪽) 사무금융노조 위원장과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조 사무실에서 김현정(왼쪽) 사무금융노조 위원장과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고영권 기자

오토바이 배달원(라이더)에게 ‘배달용 이륜자동차보험’ 가입 문턱은 매우 높다. 30대 중반의 라이더가 종합보험에 가입하면 1년 보험료가 900만원 이를 정도다. 보험에 가입해도 보험사들은 라이더 본인 오토바이 파손에 대해선 보장하지 않는다. 손해율이 높다는 이유다. 만약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는 사고가 나면, 라이더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 한 번 미끄러지면 수리비가 100만원에 가까운데, 이를 벌충하기 위해 라이더들은 무리하게 오토바이를 이끌고 거리에 나서고, 배달 건수를 늘리려고 아슬아슬한 질주를 감행한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노조 노사가 설립한 우분투재단이 배달노동자들 노조 라이더유니온에 자기 차량 손해(자차)수리비 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지난 22일 결정했다. 노동시장 양극화에서 비롯된 불평등 해소에 정규직이 앞장설 것을 천명한 사무금융노조가 노조 밖 플랫폼 노동자와 연대한 첫 사례다. 김현정(50) 사무금융노조ㆍ연맹 위원장과 박정훈(34)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을 만나 ‘양극화 시대’ 노동조합의 역할과 고민을 들어봤다.

◆자차 보험상품 없는 라이더

증권, 보험, 카드 등의 업종이 모인 산별노조인 사무금융노조는 지난 6월 노사가 사회연대기금 80억원을 모아 우분투재단을 출범시켰다. 우분투(Ubuntu)는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코사족 언어로 연대정신을 실천하겠다는 뜻이다. 우분투재단은 하반기 주요 사업으로 배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돕기로 했다. 이륜차는 자차 보험 상품이 없는데,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의 자기 과실에 의한 자차 사고 시 차량수리비 50%를 재단에서 지원한다. 일회성 지원이 재단의 목표가 아니다. 협력 정비센터를 선정해 수리비의 기준이 될 ‘표준공임단가’책정의 근거를 확보할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현재 이륜차 수리는 정비 업체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라 라이더들은 이중고통을 겪는다”며 “수리비 지원사업을 하면서 표준공임단가도 조사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서울시가 표준공임단가를 도입한 정비센터를 인증하는 이른바 이륜차 정비센터인증제를 도입하도록 재단과 유니온이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라이더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안전운전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는 건 구조적 원인 탓”이라며 “이 때문에 시민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지자체나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정비센터인증제를 도입하면 표준공임은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사무직과 라이더… 갈수록 커지는 격차

사무금융노조와 라이더유니온의 의기투합은 다소 생경하지만, 두 노조 모두 노동시장의 내부 격차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고소득 정규직의 대명사로 꼽히는 사무금융 업종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격차가 크다. 사무보조원은 기간제ㆍ계약직 등 각 사업장이 직접고용한 비정규직이고 콜센터 직원은 용역회사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보험설계사는 근로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다. 김 위원장은 “사무보조원은 정규직이 연차를 의무소진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고용안정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지만, 콜센터 직원이나 보험설계사는 여전히 사무금융노조에 가입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정규직 노조가 내부 임금인상 투쟁에만 몰입해 노동자 간 격차를 확산시킨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설립 일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설립 일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실제 정규직 노조가 교섭과 투쟁을 통해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수록, 비숙련 일자리는 기간제, 파견, 용역 등의‘이류(二流) 일자리’로 대체되고 있다. 최근엔 기술 발달로 라이더처럼 플랫폼과 위탁계약을 맺는 플랫폼 일자리로 분화되는 중이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라이더는 배달대행업체(플랫폼)를 통해 일감을 얻고 지시도 받지만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얘기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나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비정규직도 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정규직 연대가 미조직 노조에 ‘마중물’

라이더와 같은 새로운 특수고용직은 노조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은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노동 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제87호ㆍ제98호) 비준을 추진하고 있지만 보수정당과 경제계 등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1일 출범한 라이더유니온도 여전히 ‘법외노조’로 조합원이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금융노조 우분투재단의 ‘연대 실험’은 미조직 비정규직들의 노조를 활성화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될 것으로 노동계는 기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배달대행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임금, 보험, 수리비 등의 표준화 없이 라이더를 착취하는 구조인데, 법외노조여서 단체협약을 할 수 없다 보니 조합원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자차 수리비 지원처럼 조합원에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을 하면 노조 가입률이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우분투재단 기금으로 플랫폼노동자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순 없지만 사각지대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노조 위원장은 이러한 연대가 노동계 전반으로 확산되길 꿈꾸고 있다. 소득불평등, 고용불안, 청년실업, 여성경력단절 등의 얽히고 설킨 문제는 결국 정규직의 양보와 연대 없이 해결이 어렵다. 김 위원장은 “노조의 힘은 연대와 단결에서 나온다”며 “노동계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니라 사업장 밖으로 나와 연대를 실천해야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현대자동차가 배달대행 스타트업‘부릉’에 투자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현대차 노조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투자(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관심을 받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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