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장동에 청각장애인 전용 성당 
25일 문을 연 서울 성동구 마장동 ‘에파타 성당’ 외부에 수백 명의 신자들이 몰려 축성식을 기다리고 있다.

새 성전 축성식이 열린 25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에파타 성당. 성당은 고요했지만 무언의 움직임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눈빛과 손짓을 서로 주고 받았다.

이날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의 주례로 열린 봉헌미사에 참석한 수백 명의 인파는 두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하느님께 감사의 뜻을 올렸다. 본당 정면 십자가 아래에 부착된 LED전광판에는 실시간으로 미사가 중계됐고, 미사 내용은 자막과 수어(手語) 통역으로 소개됐다. 신자들은 입이 아닌 두 손으로 성가를 불렀다.

염 추기경도 “이 성당이 완공되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의 수어로 미사를 시작했다. 강론에서 염 추기경은 “에파타 성당은 새로운 희망과 영성이 깃든 꿈의 자리이다”라며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음과 정신을 열어 하느님의 뜻을 잘 받아들이기를 기도한다”고 축복했다.

25일 축성식을 연 서울 마장동 에파타 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이 봉헌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날 미사는 수어통역으로 진행됐다.

에파타 성당은 서울 최초의 청각장애인 전용 성당이다. 마르코복음 7장에서 예수가 청각장애인에게 “에파타!” 즉 ‘열려라’고 말한 데서 이름을 따왔다. 인천(청언성당)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다. 에파타 성당은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소속 신자 500여명의 오랜 바람이었다.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는 1957년 서울 돈암동에서 미사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수유동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건물을 빌려 미사를 드려왔다. 청각장애인 신자들은 수어 통역이 없으면 미사에 참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신자들과 소통에 한계가 있고, 성경을 읽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수녀회 건물에서 미사를 할 수는 있었지만 공간이 협소해 불편함이 컸다. 신자들 100여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이 몸이 불편한데도 1시간 남짓을 서 있어야 했고, 앞사람이 일어나면 뒷사람이 수어를 볼 수 없어 갈등도 생겼다. 휠체어 진입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 파주와 동두천, 안산, 충남 천안 등지에서까지 미사를 보려고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2007년부터 농아선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해온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 사제이자 에파타 성당의 주임신부인 박민서(51) 신부는 “미사를 볼 때마다 힘들어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라며 “그러다 마음의 문을 닫고, 더욱 소외되는 신자들이 많았지만 신자들 대부분이 저소득층이어서 새 성전을 마련하는 건 꿈도 못 꿨다”고 회고했다.

박민서 에파타 성당 주임신부가 축성식이 열리기 사흘 전인 22일 성당이 지어지게 된 배경을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고민 끝에 박 신부가 직접 발로 뛰었다.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를 비롯해 지방의 성당과 해외의 한인성당 150여곳을 찾아가 후원을 청하는 미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말도 못하는 신부가 어떻게 미사를 하느냐”며 번번이 거절당했다. 박 신부는 “가능한 어디든 달려갔다”며 “어려움이 많았지만 점점 많은 분들이 공감했고, 좋은 뜻에 동참해줬다”고 했다. 8년간 4만명이 후원에 참여했다. 대부분이 개인 신자였다. 불의의 사고로 자녀를 잃은 장애인 부부가 평생 가판판매와 폐지를 주워 모은 재산 1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후원금으로 성당은 대출 없이 형편에 맞는 크기만큼 지어졌다. ‘ㄱ’자 모양의 대지에 지하2층ㆍ지상6층(연면적 2,405㎡) 규모로 지어진 성당에는 대성전과 소성전, 언어청각치료실과 교리실 등이 들어섰다.

성당 입구 벽면에는 예수가 무릎을 꿇은 청각장애인의 귀를 어루만지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부조(浮彫)와 이 장면이 나오는 요한복음 6장 내용을 박민서 신부가 쓴 붓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어지는 건물 옆면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 입은 다섯 상처인 오상(五傷)을 뜻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붙어 있다.

성당 내부 곳곳엔 청각장애인 신자를 위한 장치가 있다. 입구부터 턱을 없애고, 대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몸이 불편한 이들을 배려했다. 대성전 중간 기둥이나 장식물을 두지 않아 어디서든 수어가 잘 보이도록 했다. 자막과 수어 통역이 나오는 대형 LED전광판은 미사를 잘 볼 수 있게 돕는다. 수어로 고해성사를 할 수 있게 고해소 내부 창도 넓혔고, 휠체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각층마다 성모 마리아상과 양팔 벌린 예수상 같은 조각상도 설치했다.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은 글보다 그림으로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한다”며 “십자가상, 조각상 등 내부 시각적인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25일 문을 연 서울 마장동 에파타 성당의 전경. ‘ㄱ’자 형태로 지어졌다.

에파타 성당은 2017년 준본당으로 지정된 데 이어 이날부터 속인적 본당으로 승격됐다. 서울대교구 내 유일한 속인 성당이다. 속인 성당은 특정 집단을 위한 교회를 말한다. 청각장애인 전용 성당이지만 일반 신자들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인근 주민들에게도 개방한다. 박 신부는 “일반인과 청각장애인의 벽을 허물고 사랑하면서 잘 사는 성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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