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ㆍ끝> 연재를 마치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20대를 분석한 책 ‘90년대생이 온다’를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기존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세대를 이해해보자’면서요. ‘밀레니얼 이야기’가 정치권은 물론 기업, 사회 이슈, 스포츠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청년이 배제된 청년 이야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럴 때일수록 청년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4개월 간 본보 인턴기자들은 우리 20대의 이야기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솔직했던 만큼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이하 솔까말) 연재를 마무리하며 그간의 반응들을 되짚고 밀레니얼 세대의 대답을 전합니다. 기성세대와의 의견 차가 특히 두드러졌던 ‘꼰대’편과 ‘결혼관’편의 댓글들을 살펴봤습니다.
◇꼰대 받아들이고 서로 배려해라? 꼰대 옹호론에 불과해
쉼표= 솔까말의 첫 주제였던 꼰대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직장 내에서 꼰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라’는 거였어. 연공서열이 공고한 한국에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상급자, 싫어도 좋은 척 할 수밖에 없는 아랫사람의 구분이 뚜렷하니 꼰대가 불가피하게 존재한다는 거야.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 해결책이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며 지내라’가 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어.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려는 꼰대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야. 바뀌어야 하는 건 꼰대인데, 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책임을 나눠 져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거북이= 사실상 ‘꼰대 옹호론’이지. 서로 이해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이미 연공서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꼰대가 생긴 원인이 연공서열이라는 걸 알면서 정작 연공서열을 깨려는 노력을 하지 않잖아. 나이가 들면 가만히 있어도 승진하고 임금이 올라가니 편한 거지.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니 꼰대가 사라지지 않고 재생산되는 거라고 생각해.
마라는 내운명= 연공서열이 없어진다 해도 수직적 구조가 존재하는 한, 꼰대는 생길 수밖에 없어. 나이보다 능력을 더 중시하는 미국에서조차 꼰대가 존재해. 한국도 과거에 비해 연공서열이 덜 해졌다지만 여전히 꼰대가 있어. 특히 ‘젊은 꼰대’는 꼰대가 나이와 무관하다는 걸 잘 보여줘. 결국 꼰대 문화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직위, 나이와 상관없이 나부터 꼰대가 되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하는 수밖에 없어.
◇인사는 사적 영역, 업무 평가 수단이 돼선 안 돼
복숭아= 꼰대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인사야. ‘인사 안 하는 자유 가지되, 상대가 어떤 평가를 내려도 받아들이라’는 댓글이 있었어. 인사로 ‘평가’한다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해. 회사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윗사람이면 무조건 인사하도록 강요 받잖아. 인사가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이뤄져. 우리는 우리에게 인사 안 하는 상사를 보고 ‘왜 나한테 인사 안 하지?’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상사만 아랫사람에게 인사를 강요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평가될 수 있다는 게 부당하다는 거야.
네그로니= 우리에게 인사는 철저히 사적 영역인데, 기성세대는 공적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인사를 안 하면 지적을 받고, 때로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라오기도 하잖아.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적 꼬리표가 붙고 인사고과나 업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인사는 기본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반가움을 표시할 때 하는 건데, 인사가 본래 기능을 잃은 거라고 봐. 인사는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지 직장에서의 평가 기준이 돼선 안 돼.
마라는 내운명= 인사뿐 아니라,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사적인 친밀감을 쌓는 건 좋지만, 선배의 예쁨을 받기 위해 업무 외적인 영역에서도 애써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피곤하게 느껴져. 우리가 ‘인사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니, 기존 질서에 반항심을 갖고 그에 맞서겠다는 ‘투사’처럼 보는 댓글이 많았어. 우린 부당하게 우리의 사적인 영역이 침해 당하는 게 싫고,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어.
방탈출= 동의해. 인사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누군지 모르니까 안 했을 뿐이야. 누군가와 인사를 주고받기까지는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해. 함께 일을 한다거나 밥을 먹으면서 얼굴을 익히면 당연히 인사를 하겠지. 누구든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인사를 건네는 게 맞다고 봐. 전 직장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떤 선배가 먼저 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다른 팀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해줬어. 그 이후로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어. 나도 선배가 되면 처음 보는 후배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하겠다고 다짐했어.
◇ ‘결혼=정상’ 규범 깨야
강냉이= 우리의 결혼관을 듣고서 ‘결혼 안 하겠다’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틀에 박힌 결혼 혹은 ‘결혼하는 게 곧 정상’이라는 규범을 깨고 싶다는 거였어. 비혼을 문제적 상황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어. 결혼 유무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해야 해.
쉼표= 비혼주의자들이 흔히 듣는 말이 ‘결혼이라는 게 원래 힘든 건데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는 거야.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가 손해보고 희생해야 하고 싸우는 게 싫어서인데, 결혼의 부정적 측면을 다 알면서도 가족을 꾸리는 게 더 낫다는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게 특이해. 그리고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폭력과 고통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무마할 수 있는 것 혹은 사랑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해. 마치 비혼주의자가 폭력과 고통을 감내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니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아. 설령 진정한 사랑이 고통을 견뎌내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뤄져야 할 이유는 없어.
방탈출= ‘희생’이란 건 뭔가를 떠 안는다는 말인데, 애초에 희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만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가정을 꾸리고 싶다면 결혼할 수 있겠지. 가치 판단의 문제니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해. 그런 점에서도 결혼은 자발적이어야지, 강요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블루베리=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봐. 전통적으로 결혼으로 얻는 혜택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건 명백하지만 모두에게 ‘기존 결혼 문화에 저항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꼰대도 마찬가지지만 기존의 틀을 타파하려면 저항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해. 특히 가족이라는 매우 좁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결혼은 구성원들이 서로 가깝게 엮여 그 과정이 더욱 쉽지 않아. 여성의 경우는 더 심하지. 개인의 선택이나 상황도 존중돼야 하는 것 같아.
거북이=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한데 내가 시어머니한테 그대로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실제로 우리 엄마가 할머니에게 그렇게 못한다는 걸 보고 자랐고. 애초에 적극적으로 맞설 자신이 없으니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거지.
◇부모의 경제적 지원, 결혼 개입과는 별개의 문제
방탈출= ‘낳아주고 키워줬는데 자식 결혼에 개입하는 게 당연하다’는 댓글이 많았어.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대가 없는 사랑은 불가능한 건가 씁쓸해지더라. 부모의 양육과 자식의 보답이 거래하듯이 등가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야. 아이는 혼자서 자랄 수 없으니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 부모가 원하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그 동안 키워준 부모를 배신하는 일이 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자식은 부모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야.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너무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어.
마라는 내운명= 내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굳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면서까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야. 한국에서 결혼을 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사실상 부모 도움 없이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 결혼이 불행의 시작인 것만 같아. 무엇보다 내 결혼으로 인해 부모님에게 가난한 노후를 드리고 싶지 않아.
거북이= 오히려 ‘기브 앤 테이크’를 확실히 따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경제적으로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된 후부터는 결혼을 비롯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유럽, 미국에서처럼 일찍부터 대출도 받고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면 좋겠어.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야.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대학 등록금, 결혼 자금까지 부담해도 노후에 문제 없다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빚 져서까지 자녀 인생을 위해 많은 돈을 쓰지 말자는 거야. 부모님은 자식 대신 본인의 노후를 더 챙기셨으면 좋겠어.
◇‘어려서 모른다’고 말하기에 앞서 청년 세대의 말 귀 기울여야
밀의응답= 우리들이 올린 기사 댓글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말이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 ‘좀 더 살아보면 알게 된다’는 거였어.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로 청년 세대의 입을 막고, 대화를 차단해. 우리 사회에서 나이 어린 사람의 말은 쉽게 힘을 잃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해서 말하면 ‘어린 게 뭘 아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곤 해.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런 거라면서 잘못된 걸 합리화하고 가르치려고 해. 나이라는 ‘훈장’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잘 먹히는 것인지 느꼈어. 새로운 생각을 가져도 나이라는 변수가 개입되면서 결국 기존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의견만 살아남는 것 같아.
타코= 기성세대가 경험한 20대와 지금의 20대가 너무 다르고, 그들의 40대와 앞으로 우리가 경험할 40대가 너무나 달라. 우리 세대를 무조건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서로의 가치관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
강냉이= 기사 댓글창은 세대갈등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공간이었어. 같은 기사를 보고도 누군가는 공감된다고 말하는 반면 누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해. 하지만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고민해 보게 됐어. 세대 갈등은 분명 실재하지만, 조그만 의견 차이가 단순히 세대 간 비난과 소통 단절로 흐를 게 아니라 서로의 성장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고려한 이해와 협의의 과정이 됐으면 좋겠어.
정리= 권현지, 김의정 인턴기자
참여= 김의정, 임태형, 정선아, 정영인, 정예진, 조희연, 주소현, 최한솔, 홍윤기, 홍윤지, 화이투 인턴기자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 했습니다. 그 동안 귀 기울여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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