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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평등교육의 종점

입력
2019.08.2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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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서울ㆍ부산지역 자사고 지정취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서울ㆍ부산지역 자사고 지정취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OECD가 만 15세 학생 대상으로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대한민국의 순위가 추락하고 있다. 2015년에는 이 평가 시행 이래 처음으로 읽기, 수학, 과학 모두 3위 내에 들지 못했다. 순위 하락의 주요 이유는 하위권 학생의 증가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견인해온 ‘교육’의 내일을 염려하게 되는 소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며 국가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국경을 초월한 우수인력 쟁탈전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인재가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다. 미래 우수인재 양성은 국가적 역량 발휘를 위한 최우선 과제다. 게다가 교육은 30년을 내다보는 지혜이자 고금의 진리다. 이 때문에 평등교육을 주장하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일괄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오늘이 참으로 안타깝다.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교입시가 존재하던 시절, 명문고로 진학하려는 수험생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입시 부담을 덜고자 실시된 고교평준화는 과열 경쟁을 해소하고 평균 학력을 끌어 올렸으며 학교 간 학력격차 완화와 같은 순기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전반적 교육 수준의 하향평준화, 경쟁원리의 실종, 학습의욕 상실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자사고 폐지가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고교평준화의 단점을 보완하는 길을 차단한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부모들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한다. 학생의 수학 능력, 부모의 우수한 교육에 대한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쟁력 저하를 보완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운동시간을 제한하지 않고 연구원들의 연구시간을 제한하지 않으며 기업의 운영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것은 자율적이고 치열한 경쟁이 더 나은 기록, 기술, 이윤을 창출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키우기 때문이다. 모든 경쟁을 제한하고 기계적 평등을 밀어붙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우수학교, 명문학교는 또다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없앨텐가?

게다가 자사고 폐지를 통한 평등교육을 강하게 주장하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정작 자신들의 자녀는 자사고, 외고에 진학시켜 비판을 받고 있는데 자기 아이만 경쟁에서 유리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억측을 사기에 충분하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고 그것이 전체의 번영과 안정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작금의 자사고 폐지 정책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오늘의 국가 성장과 경쟁력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등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고교 교육의 경쟁 동력 상실을 유발하고 나아가 학력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할 국가 경쟁력 저하는 우리 다음 세대의 먹고 사는 문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가릴 혜안이 필요하다.

국가가 경쟁력을 잃게 됐을 때 국민들이 마주하게 될 현실을 예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36년 간의 일제강점기에도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국가 생존력과 경쟁력이었다. 평등만을 추구하는 교육의 위험성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기계적 평등이 가져올 결과가 공포스럽지 않은가?

이 방향의 종점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이러다 대학까지도 모두 평준화하려 하지 않겠는가? 우리 교육시스템을 보고 글로벌 경쟁자들이 박수 칠 일은 막아야 한다. 우리가 겪은 불행한 역사를 대물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이고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갈 것인가. 가진 것은 사람 밖에 없는 나라가.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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