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갈등, 전문가 긴급진단]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日 보복ㆍ미중 무역분쟁 심화 땐 내년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이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정부가 지난 22일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ㆍ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카드를 꺼내든 데 대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전술적으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는 외형상 일본에 대한 조치였지만 동북아 안보의 한 축인 미국에도 우리 입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 회장은 향후 일본과의 협상은 “우리 정부가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나설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라고 봤다.

-우리 정부가 예상 밖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냈다.

“지소미아 종료는 한미일 안보 공조의 한 축이 무너진다는 측면에서 불안감은 있다. 그러나 3국간 밀고 당기는 협상 과정에서 전술적 측면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으로서는 지금 일본의 태도가 동북아 안보 위해 요인이라는 것을 미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미국이 그간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것도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최근 미국의 태도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면에 ‘제2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미국에게도 지소미아 파기가 큰 위협이 될까.

“한국, 일본보다는 지소미아 같은 공조 체계가 절실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전략자산은 대부분 미국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소미아 종료가 결정적 카드는 아니어도, 잠시 활용할 카드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미국의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한국을 지원했던 것, 2008년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를 해준 것도, 한국이 무너지면 동북아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일 갈등이 이렇게까지 커진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과거 정부에서부터 쌓여왔던 갈등이 터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경분리라는 대원칙을 깬 것은 일본이다. 과거 지금보다 더 사이가 안 좋았을 때도 양국이 정경분리 원칙은 지켜왔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한국 산업의 심장이라 할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데서 비례원칙을 깨면서까지 치명적인 칼을 빼 들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일본과의 갈등 해결을 위해 정부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강 대 강 대결은 피해야 한다. 아직은 우리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지도자라면 이 점을 인정하고 외교로 풀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정당성을 일본이 인정한다면 그 효력을 인정하고 집행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는 협의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정부가 혁신성장을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혁신성장이라는 방향이 긍정적인 신호는 맞는데, 방법론은 아직 부족하다. 언제쯤 소재ㆍ부품 신기술을 개발해 대량생산 체제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정부가 제시해야 하는 것은 거기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그 동안은 우리가 어떻게 버틸 지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충분한 병력ㆍ물자도 중요하지만, 제한된 자원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작전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일 문제 외에도 한국을 둘러 싼 경제 여건이 부정적이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 방향으로 대외 여건이 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일본이 추가로 수출 항목별 제재를 가하고 미ㆍ중 무역전쟁이 더 커진다면 일본에서 부품ㆍ소재를 수입, 가공해 중국을 거쳐 세계로 수출하는 우리 무역구조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마이너스 성장이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확장재정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당장은 그 방법 밖에 없지만 장기간 이어진다면 재정 여건도 고민해야 한다. 써야 할 예산은 늘어나는데 세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금을 무한정 늘리기 어렵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한일문제라도 정치적인 타협에 나서야 한다.”

-세계 환율전쟁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펀더멘털이 좋다고 강조하는데.

“환율이 갈수록 더 불안해질 수 있다. 원화가 어느 정도 약세라면 무역흑자 폭을 늘리는 효과가 있긴 하다. 그러나 급격히 움직인다면 문제다. 꾸준히 유입되더라도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외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라고 하지만, 세계를 떠도는 투기성 유동자금은 수조달러에 이른다. 영국 같은 나라도 ‘파운드화 위기’를 겪는데,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에서 펀더멘털은 큰 의미가 없다. 투기자본이 약점을 찾고 달려든다면 얼마든지 급반전(Sudden reversal)이 발생할 수 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최중경 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3학년 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행정고시(22회)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였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1차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공직 재직 시절 강력한 외환 개입 정책으로 ‘최틀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6년부터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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