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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이제 불치병이란 멍에 벗어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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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이제 불치병이란 멍에 벗어 던지나

입력
2019.08.27 05: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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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골수성’ 먹는 약으로 90%가 정상생활… ‘급성골수성’, 저독성 고효율 치료길 열려

먹는 치료제와 표적치료제 등이 속속 개발되면서 백혈병은 불치병이라는 멍에가 이제는 사라질 전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먹는 치료제와 표적치료제 등이 속속 개발되면서 백혈병은 불치병이라는 멍에가 이제는 사라질 전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백혈병=불치병’이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모든 연령대에서 발병하고 환자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급성·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백혈병에 걸리면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 하지만 치료를 잘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이면 약을 복용하면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환자가 90%가량이나 된다. 급성골수성백혈병도 치료가 힘들고 오래 입원해야 하지만 최근 다양한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백혈병 치료 전문의들은 입을 모은다.

비정상적인 백혈구 과다 증식 발병

백혈병은 혈액세포 가운데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과다 증식해 정상 백혈구뿐만 아니라 적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 생성을 막는 암이다. 악화 속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암세포 발생 계열에 따라 골수성과 림프구성으로 나뉜다. 따라서 급성 골수성·림프구성 백혈병, 만성 골수성·림프구성 백혈병 등 4가지로 분류된다.

어른은 주로 급성과 만성 골수성백혈병에 걸린다. 특히 전체 백혈병의 0.4~0.5%에 불과한 희귀병인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환자 대부분이 65세 이상이다.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은 어린이에게 주로 나타난다.

백혈병은 감기처럼 열이 나거나 밤이 땀이 많이 흘리고,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 들어 병원을 찾다가 발견한다. 성인 환자가 80%나 되는 만성 및 급성 골수성백혈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았거나, 방사선 치료 특히 골수세포가 많이 있는 골반 쪽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거나, 벤젠 등 독성 물질에 노출됐을 때 걸릴 위험이 높다.

엄지은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은 골수가 혈액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무기력감, 운동 시 호흡 곤란, 어지럼증 등이 생길 수 있고, 혈소판이 줄어 자주 코피가 나고 멍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정상 백혈구가 부족해 발열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별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에서 많이 발견된다.

강모열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와 윤진하 연세대 의대 교수팀은 지난 22일 비행기 탑승이 잦은 항공교통산업에 종사하는 남성이 다른 직업군보다 백혈병 발병률이 1.8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2002∼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항공교통산업 종사자 연인원 5만9,751명과 다른 직장인의 암 발생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다.

미량의 방사선이 백혈병 발생 위험을 늘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국제 공동연구팀이 핵 작업자 822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다. 방사선 노출이 10mSv(밀리시버트) 늘어날 때마다 백혈병 발생 위험률은 0.002%씩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의학저널 랜싯(Lancet)에 실렸다.

백혈병 가운데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경구용 치료제만 복용하면 90% 정도가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백혈병 가운데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경구용 치료제만 복용하면 90% 정도가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만성골수성백혈병 90%가 10년 이상 생존

만성골수성백혈병은 2001년 역사적인 경구용 항암제 ‘글리벡’이 개발된 뒤 장기 생존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치료가 잘된다. 1세대 약인 글리벡 이후 2세대 약(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과 3세대 약(아이클루시그)이 개발됐다. 이들 표적치료제는 백혈병을 일으키는 융합유전자(bcr/abl)가 작동할 수 없도록 억제하는 메커니즘이다.

김희제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표적치료제가 속속 나오면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가운데 마치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처럼 약을 매일 먹으면서 10년 이상 장기 생존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급성골수성백혈병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일부 예후가 가장 좋은 환자는 3년 생존율이 50~60%이지만 예후가 나쁜 환자는 30%도 되지 않는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 40여년 동안 ‘3+7 항암치료법’이라는 표준 항암치료법이 시행됐다. 3+7 항암치료법은 2가지 세포독성 항암제를 각각 3, 7일 동안 주사로 병용 투여한 뒤 치명적인 부작용을 잘 견뎌야만 1개월 뒤 환자의 70% 정도가 생명 연장을 기대하는 전근대적이면서도 유일한 교과서적 치료법이다.

김희제 교수는 “이 치료법은 고령 환자에게 치명적인 전신 합병증을 일으켜 상당수가 치료 도중 목숨을 잃었다”며 “게다가 1차 양호 반응을 얻어도 수 개월이나 수 년 뒤에 다시 재발해 사망에 이르는 환자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에 근본적인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2017년 4종의 표적치료제를 승인하면서 지난 40년간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투여하던 전통적인 표준 치료법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희제 교수는 “새로운 치료법이 70세 이상 고령 환자도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낮은 독성과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 표적치료제가 FLT3 돌연변이 유전자에 대한 표적치료제(미도스토린)이다.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 2017년 6월호에 실린 717명의 환자가 참여한 3상 임상시험에서 FLT3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미도스토린을 투여하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74.7개월 대 25.6개월의 큰 차이로 생존율이 높았다. 현재 FLT3 유전자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3종의 유사 치료제가 다양한 임상시험을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다.

또한, IDH 2 돌연변이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약제(에니시데닙, CPX-351)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특히 CPX-351은 기존 3+7 항암치료법의 한계를 뛰어 넘는 저독성 고효율의 치료법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불치병처럼 여겨지던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가 1차 항암치료에서 양호한 반응을 보일 때 제때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면 59.4%가 장기 생존한다는 연구 결과가 2017년 미국혈액학회지에 발표됐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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