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는 A(33)씨는 결혼 5년차이지만 임신 계획이 없다. 아예 아이를 낳지 않기로 남편과 합의를 봤다. 의사인 남편도 수련의인 A씨의 선택에 동의했다. A씨는 “전공의법이 만들어져 임신을 하면 출산 전후 90일간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법은 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산휴가를 다 사용하기도 힘들고 빈자리를 동료와 선배 레지던트가 채워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며 “의대에 입한 후 결혼은 몰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여성 전공의(인턴ㆍ레지던트)들에게 출산은 축복이 아닌 걸림돌이다. 기혼 여성 전공의들은 “인턴, 레지던트 채용 면접 때 심사위원들이 출산계획이 있는지 묻는다”며 “아마도 출산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으면 채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김수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전공의 채용 시 여의사들에게 결혼ㆍ출산계획을 물으면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법 제7조는 사업주가 여성 근로자를 모집ㆍ채용할 때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ㆍ키ㆍ체중 등의 신체조건 미혼 조건 등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전공의 간 위계질서가 엄격한 병원 면접에선 이 같은 구시대적 질문이 아직도 나온다.
병원의 출산 정책에 대한 여성 전공의들의 불만은 조사로도 증명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2017년)’에 따르면 여성 전공의 10명 중 4명 이상(47.3%)이 출산휴가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공의가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출산 전후 휴가일은 평균 82.2일로 법에서 정하고 있는 90일에 미치지 못했다. 여성 전공의들은 “병원이나 의국에서 암묵적으로 압박하고, 동료 전공의들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출산휴가를 다 쓰지 않는다”며 “병원이나 의국에서 출산휴가를 다 쓰지 말 것을 직접 지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관 대한전공의협의회 여성이사는 “협의회에 접수된 출산 관련 민원을 보면, 출산휴가를 받은 지 2개월 정도 되면 병원에서 ‘언제 출근할 수 있냐’는 전화가 와서 휴가를 다 채우지 못하고 복귀했다는 내용이 많다”고 전했다.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를 다 쓰고 복귀하면 “정말 휴가를 다 쓰고 왔다”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여성 전공의들의 출산문제 해결과 모성보호를 위해서는 양적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 위주로 전공의 수련 체계가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여성이사는 “수련병원마다 레지던트 연차별 커리큘럼이 있지만 주 80시간 근무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수련을 받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무조건적으로 근무시간을 채우는 시간제 교육이 아닌 성과위주의 교육시스템을 운영해야 여성 전공의들의 출산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별로 연차에 따라 직무를 부여해 수련을 하면 근무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 여성이사는 “이를 위해서는 전공의들이 당직 부담에서 벗어나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입원전담 전문의’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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